네 번째 혁명
The fourth revolution
대단히 간략하게 말하자면, 과학은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키는 두 가지 근본적인 방식이 있다. 한 가지는 외향적(extrovert) 방식 또는 세계와 관련된 방식으로, 그리고 나머지 다른 한 가지는 내향적(introvert) 방식 또는 우리 자신과 관련된 방식으로 부를 수 있다. 세 번의 과학혁명은 외향적으로도 내향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키면서 그것들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관념도 수정하였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 이후에 태양중심적 우주론은 지구와 인류의 지위를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렸다. 찰스 다윈(1809-1882)은 모든 생물종들이 공통 조상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화했다는 것을 증명했는데, 그 결과 인류를 생물학적 왕국의 중심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를 좇아서 현재 우리는 마음 역시 무의식적이고 억압에 대한 방어 메커니즘의 지배를 받는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인류는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코페르니쿠스 혁명), 동물 왕국의 나머지 부분에서 부자연스럽게 분리되어 있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며(다윈 혁명), 그리고 예를 들면, 르네 데카르트(1596-1650)가 가정했듯이, 우리는 자신에게 전적으로 투명한 고립된 마음들이 결코 아니다(프로이트 혁명).
이런 고전적 그림의 가치에 대해 쉽게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프로이트가 이런 세 혁명을 인간 본성의 재평가라는 단일한 과정의 일부로 해석한 최초의 인물이었고, 그의 시각은 노골적으로 자화자찬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프로이트를 인지과학이나 신경과학으로 대체하면, 최근에 인간의 자기 이해에 매우 중요하고 심대한 일이 일어났다는 우리의 직관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틀을 여전히 찾아낼 수 있다. 1950년대 이래로 컴퓨터 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은 내향적 및 외향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인류와 세계의 상호작용뿐 아니라 인류의 자기 이해도 변화시켰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는 고립된 존재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연결된 정보적 유기체 또는 인포그(inforg)로서 궁극적으로 정보로 이루어진 전지구적 환경, 즉 정보권(infosphere)을 생물학적 행위자들과 제작된 인공물들과 함께 공유한다. 정보권은 모든 정보적 과정, 서비스 그리고 존재자들로 구성된 정보적 환경인데, 따라서 정보적 행위자들뿐 아니라 그것들의 특성, 상호작용 그리고 상호관계들을 포함한다. 네 번째 혁명에 대한 대표적인 과학자가 필요하다면, 이것은 분명히 앨런 튜링(1912-1954)이어야 한다.
인포그는 과학소설적 판본의 '사이보그화된' 인류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육체에 블루투스 무선 헤드셋을 이식한 채 돌아다니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닌 듯 보이는데, 특히 그런 행동은 자체가 나타내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항상 호출에 대기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노예 상태이고, 그래서 매우 바쁘고 중요한 인물이라면 누구나 그 대신에 개인 비서를 두게 된다. 어떤 종류의 사이보그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피하려고 노력할 그런 것이다. 인포그라는 관념도 정보적 DNA와 그것의 미래 육화를 담당하는, 유전자적으로 변형된 인류를 향한 한 걸음이 아니다.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이 단계에서 진지하게 논의하기에는 기술적으로도(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그리고 윤리적으로도(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여전히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오히려 네 번째 혁명은 인간 행위자들의 본질적인 정보적 본성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개인들이 '데이터 그림자' 또는 디지털 분신, 즉 이메일 주소, 블로그 그리고 홈페이지로 표상되는 하이드 씨를 갖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선다. 이런 명백한 사실들은 디지털 정보통신기술을 역량 향상 기술에 불과한 것으로 오인하도록 부추길 뿐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행위자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이런 새로운 행위자들이 어떤 종류의 환경에 거주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서 일어나는 더 조용하고, 덜 선정적이며, 그럼에도 중요하고 심대한 변화이다. 그것은 우리 육체의 어떤 환상적인 교체, 또는 탈인간적 조건에 관한 어떤 과학소설적 추측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심각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실재와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의 급진적인 변형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것을 설명하는 좋은 방식은 향상(enhancing) 장치와 증강(augmenting) 장치를 구분짓는 것에 기대는 것이다.
맥박 조정기, 안경 또는 인공 수족 같은 향상 장치는 그 장치가 인간공학적으로 사용자의 육체에 부착될 수 있게 하는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이보그 발상의 시작이다. 그 대신에 증강 장치는 상이한 가능 세계들 사이에 소통(통신)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다. 예를 들면, 한편으로는 인간 사용자의 일상적 거주지, 외부 세계, 즉 실재가 존재하면서 그것에 거주하고 있는 행위자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동적이고 축축하고 미끈미끈하고 뜨껍고 어두운 설거지 기계의 세계, 마찬가지로 축축하고 미끈미끈하고 뜨겁고 어두울 뿐 아니라 회전도 하는 세탁기의 세계, 또는 고요하고 냉정하고 건조하고 차갑고 잠재적으로 빛을 내는 냉장고의 세계가 존재한다. 이런 로봇들이 성공적일 수 있는 까닭은 그것들이 자체의 역량 주변에 맞춤형으로 '포장된'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 그 반대의 상황 때문은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 행위자와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개수대에서 설거지를 하기 위해 <<스타워즈>>의 C3PO 같은 드로이드를 제작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착상일 것이다. 그런데 정보통신기술은 방금 설명한 의미로 향상하거나 증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통신기술은 사용자가 (아마도 우호적인) 게이트웨이를 통해서 진입하여 일종의 입회 의식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조장하기 때문에 장치를 급진적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이런 급진적인 형태의 개량을 나타내는 술어는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매우 급진적인 형태의 개량, 즉 체계(예를 들면, 회사, 기계 또는 어떤 인공물)를 새롭게 설계하고, 구성하거나 조직할 뿐 아니라 그것의 내재적 본성, 즉 존재론을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신조어로서재존재화(re-ontologizing)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마우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의 기술이 사용자로서의 인간에 적응했을 뿐 아니라 인간을 교육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25년에 태어난)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는 예전에 내게 자신의 가장 유명한 발명품, 즉 마우스를 다듬고 있었을 때 심지어 그는 사용자의 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그것을 책상 아래에 놓고서 발로 조작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고 말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은 대칭적 관계이다.
앞의 구분짓기로 돌아가면, 설거지 기계 인터페이스는 그 기계를 사용자의 세계와 접속시키는 패널인 반면에, 디지털 인터페이스는 사용자를 사이버공간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게이트이다. 이런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가상 공간', '온라인 상에 존재하기', '웹을 서핑하기', '게이트웨이' 등과 같은 다양한 공간적 비유들의 근저에 놓여 있다. 당연히 인류가 일상적 서식지에서 정보권 자체로 이주하는 획기적이고 전례가 없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는데, 특히 정보권이 일상적 서식지를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인간들은 정보적 산물들에 더 우호적인 환경에서 작동하고 있는 다른 (아마도 인공적인) 인포그와 행위자들 속에서 살아가는 인포그들이다. 우리 같은 디지털 이민자들이 우리 아이들 같은 디지털 원주민으로 일단 대체되면 e-이주는 완결될 것이고, 미래 세대들은 정보권으로부터 단절될 때마다 물 밖에 나온 고기처럼 박탈감, 배제감, 장애 의식을 점점 더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은 네 번째 혁명인데,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과 우주에서의 지위를 재평가하고 이동시키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실재의 궁극적 본성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일상적 시각, 즉 형이상학을 물리적 객체와 과정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유물론적인 것에서 정보적인 것으로 수정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그것들이 기체(基體)에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음악 파일을 생각하자)는 의미에서 객체와 과정들이 탈물리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객체의 일례(어떤 음악 파일의 내 사본)가 그것의 전형(내 사본이 일례인 당신의 음악 파일)만큼 훌륭하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은 전형화된다. 그리고 내 사본과 당신의 원본이 맞바꿀 수 있게 된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완벽하게 복사될 수 있다고 가정된다. 객체와 과정들의 물리적 본성을 덜 강조한다는 것은 사용 권리가 최소한 소유 권리만큼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현존에 대한 기준―무언가가 현존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더 이상 현실적으로 변경될 수 없다는 것(그리스인들은 변화하지 않는 것만이 완전히 현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이거나, 또는 잠재적으로 지각될 수 있다는 것(근대 철학은 현존하는 것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오감을 통해서 경험적으로 지각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 아니라, 막연할지라도 잠재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호작용이 간접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 존재한다는 것은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들을 살펴보자.
최근에 소프트웨어의 취득을 현재 사업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간주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산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여타의 자본 투입으로 취급함에 있어서 많은 나라들이 미합중국을 좇았다. 이제 소프트웨어에 지출하는 것은 어김없이 국내 총생산에 기여한다. 그래서 아무튼 무형의 것일지라도 소프트웨어는 (디지털) 재화로 인식된다. 가상 자산 역시 중요한 투자를 나타낸다는 점을 수용하는 것이 너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또는 중국에서 나타난 이른바 '가상 노동 착취 공장(virtual sweatshop)'이라는 현상을 고려하자. 폐쇄 공포증을 유발하는 초만원의 방에서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동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나 <리니지(Lineage)> 같은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다른 놀이꾼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캐릭터, 장비 또는 게임에서 통용되는 화폐 같은 가상 재화를 창출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의 최종 사용자 사용권 계약(EULA, 이것은 상업적 소프트웨어의 모든 사용자가 그것을 설치함으로써 받아들이는 계약이다)은 여전히 가상 자산의 판매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디지털 문서의 소유권을 사용자에게 주는 것을 보류하는 MS 워드의 EULA와 비슷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바타와 자산을 구축하는 데 수백 시간 그리고 수천 시간을 투자함에 따라 상황은 변할 것이다. 미래 세대들은 자신이 소유하기를 바랄 디지털 존재자들을 물려받을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이베이에서는 수천 개의 가상 자산이 판매되곤 했다. 소니는 더 적극적으로 '스테이션 교환', 즉 '놀이꾼들에게 SOE의 사용권 계약, 규칙 그리고 지침에 따라 게임 코인, 아이템 그리고 캐릭터들을 사고파는[내 사양에는 달러로] 안전한 방법을 제공하'는 공식적인 경매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상 자산의 소유권이 일단 법적으로 확립되면, 그 다음 단계는 재산 소송의 출현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2006년 오월에 펜실베니아의 한 변호사가 수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자신의 가상 토지와 다른 재산을 부당하게 압류했다는 혐의로 <세컨트 라이프(Second Life)>의 제작자를 고소했다. 아바타에 대한 위험을 보호하는 보험회사가 나타날 것인데, 이것은 지역 슈퍼마켓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애완동물 보험에 비견할 만하다. 또 다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탁월한 예를 제공한다. 월 사용자가 거의 1200만 명에 이르는 그것은 현재 세계 최대의 MMORPG이며, 인구 수에 따라 정렬된 221개국과 부속 영토들의 목록에서 71위에 해당할 것이다. 자신의 디지털 자산을 구성하고 불리고 개선하는 데 수십 억 시간을 소요한(소요할) 사용자들은 재산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기꺼이 몇 달러를 지불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은 실제로 미래 세대들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살아갈 새로운 정보적 환경을 창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평균적으로 영국인들은 이미 TV를 시청하는 것보다 온라인 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미합중국 성인들은 이미 정보권 내부에서 일 년에 거의 다섯 달에 이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인구의 나이는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예를 들면, 전미 오락 소프트웨어 협회에 따르면 2008년에 게임 놀이꾼의 평균 나이는 35살이었고 13년 동안 게임을 했으며, 가장 빈번한 게임 구매자의 평균 나이는 40살이었고 50세 이상 미합중국인들의 26%가 비디오 게임을 했는데, 그 비율은 1999년의 9%에서 증가했다.
――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 <<정보: 매우 짧은 입문(Informa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2010), pp.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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