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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6일 화요일

[인터넷 거버넌스] NSI vs ICANN

[인터넷 거버넌스] NSI vs ICANN

| 성명서
2000/03/30
※ 2000년 3월 24일 한국인터넷정보센터 아이켄 포럼(ICANN FORUM) 자료

NSI vs ICANN


1. NSI와 ICANN 간의 분쟁의 연원

지난 1999년 9월, DoC, NSI, ICANN 간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로서 수년간 끌어오던 도메인 네임 등록 업무에 대한 다툼이 일단락되었다. 이 협정은 그동안 논의되어 오던 도메인 등록 업무의 경쟁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새로운 gTLD(generic Top Level Domain)를 둘러싼 논란의 해결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이 협정이 체결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그동안의 쟁점과 이 협정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잘 알려진 바대로 초기에 인터넷 도메인 네임과 주소 관리는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Information Sciences Institute(USC-ISI)에서 Jon Postel이 DARPA의 지원을 받아 행하고 있었다. 바로 이 활동이 Internet Assigned Numbers Authority(IANA)라고 불리는 업무였다.
존 포스텔이 15년동안 수행해오던 임무는 1987년 USC의 ISI로부터 SRI-NIC(Defense Data Network Information Center at SRI International/Stanford Research Institute Network Information Center)로 위탁되었다.
또한 1991년 도메인 네임 등록 권한이 다시 SRI-NIC에서 Government System Inc.(GSI)로 이관되었다. 이 등록 업무(DNS 서버의 운영과 TLD의 등록 업무)는 1993년 1월 1일부터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와 NSI(Network Solutions Inc.) 간의 협력협정에 의하여 GSI에서 NSI로 이관되어 수행되었다.
즉 NSI의 등록업무는 당초에는 IANA의 기능의 일부였다가 SRI-NIC으로, 다시 GSI로 이관되었다가 1993년 NSI로 이관된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NSI의 업무가 단지 도메인 네임 등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Internet Registry의 기능까지도 포함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애초에는 도메인 네임 등록업무와 IR 기능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수행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현재까지 NSI가 유일한 등록처로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게 되는 역사적 연원인 셈이다.
1994년, 도메인 네임의 등록은 민간 영리기업인 Network Solutions(NSI)가 National Science Foundation(NSF)와의 5년 협력 협정을 통해 맡게 되었다. 원래 NSI는 매년 1백만 달러의 고정금을 가지고 이 일을 수행하기로 되어있었지만, 도메인 네임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상업적 등록업무에 대한 연방 지원금을 배정하는 것이 부적절했기 때문에 NSI는 도메인 네임 등록에 대해 요금을 부과하도록 해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다. 연방 정부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1995년 7월부터 .com, .net, .org 도메인 네임 사용자에 대해 연간 50달러의 요금이 부과되었다.
요금 덕에 북미에서 도메인 네임 사업을 독점적으로 하던 NSI는 수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상업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사업을 차지하게 되었다. 도메인 네임 등록은 (북미에서는) NSI에 의해 성공적으로 상업화되었다.


2. 인터넷 관리의 민간이관 시도

1994년 7월, 포스텔은 IANA 기능을 USC-ISI와 정부 간의 계약으로부터 Internet Society에 넘길 것을 제안하는 charter를 준비했다. 이것이 인터넷 가버넌스에 대한 민간이양의 최초의 시도였다. IANA의 민영화를 위한 포스텔의 시도는 1996년 10월, International Ad Hoc Committee(IAHC)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IAHC는 ISOC, 이전까지 ISOC에 대한 반대자였던 ITU, 지적 재산권과 관련된 이해당사자인 WIPO, INTA(International Trademark Association), NSF, IETE/ISOC에서 개개인이 참여한 연합체의 성격을 띄었다. IAHC는 11월 발표한 최종 보고서에서 도메인 네임에 경쟁 도입을 위한 제안을 했다.
도메인 네임 등록에 본격적인 경쟁을 도입함과 동시에 도메인 네임 스페이스는 '공적 자원'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도메인 네임 등록 업무에 관한 안을 제시했다. 새로운 도메인 네임 등록처의 운영은 민간 영리 회사에게 맡긴다. 이에 따르면 NSI와 같은 회사가 여럿 생겨서 경쟁을 하게 된다. 즉 도메인 네임 등록을 완전히 시장의 경쟁에 맡긴다는 것이다. 또한 등록처의 데이터베이스를 비영리 독점인 것으로 인식하여, 등록처 데이터베이스의 'wholesale' 운영의 기능(등록처)과, 등록의 'retail' 기능(네임 등록, 청구, 컨택트 정보 유지 등; 등록대행처)을 분리한다.
즉 등록처 간, 등록대행처 간에는 경쟁이 도입되지만, 하나의 등록처는 경쟁하는 여러 등록 대행처에 의해 비영리 기반으로 운영되며 TLD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도메인 네임에 있어서 상표권 보호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는 새로운 TLD의 도입에 대한 상표권자의 반대를 잠재우고 도메인 네임 등록에 있어서 상표권자에게 힘을 부여하기 위한 조치였다. 주요한 내용은 도메인 네임에 대한 60일 간의 대기 기간의 도입, WIPO에 의한 검토와 분쟁 해결, '유명한' 상표에 대한 등록 배제 등이었다.
또한 IAHC는 포스텔이 제안했던 새로운 '서술적' TLD 중에서 7개{{) .web, .info, .nom, .firm, .rec, .arts, .store의 일곱 개이다.
}}만을 다시 제안했다. 이 역시 지나치게 많은 새로운 TLD의 도입으로 상표권 보호에 어려움을 생길 것을 두려워하는 상표권자의 요구를 받아들인 타협적인 제안이었다.
IAHC는 나아가 Generic Top Level Domain Memorandum of Understanding(gTLD-MoU)라는 새로운 가버넌스의 구조를 제안했다. 등록대행처는 매스터 데이터 베이스의 서버를 고나리하는 비영리 조직인 Council of Registrars(CORE)에 가입하게 되는데, 가입비로 2만 달러, 월 2천달러, 그리고 도메인 네임 당 일정 요금을 내도록 했다.
한편 NSI는 gTLD-MoU를 통한 공동등록모델(shared registry model)이 IAHC의 시도가 NSI의 .com 도메인에 대한 통제권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았다.
논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미 정부가 공식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1997년 7월, 민간이양의 책임은 NSF로부터 물려받은 상무성 산하 NTIA(National Tele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Administration)는 도메인 네임 정책에 관한 Notice of Inquiry를 내놓았다. 미 정부는 루트 서버에 대한 최종적 권위를 주장했고, 전세계적인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권위를 넘겨주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이제 IAHC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미 상무성 주도의 민간이양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3. ICANN의 설립과 NSI와의 갈등

1998년 2월, 미 상무성은 "A Proposal to Improve Technical Management of Internet Names and Addresses"("Green Paper")를 발표하였다. 이 제안에서는 미국에 본부를 두고 DNS와 IP 주소를 관리하는 국제적 민간 비영리 법인을 구상했다. 미 정부는 또한 경쟁을 위해 제한없이 등록대행처를 새로 만들 것을 권고하고, 2000년 9월 30일까지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1998년 6월, 미 상무성은 최종 보고서인 White Paper(Management of Internet Names and Addresses)를 발표했다. 미 정부의 최종안('White Paper')은 도메인 네임 등록사업을 경쟁적이고 시장 중심적인 사업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확인했다. 그러나 새로운 TLD를 즉각 추가한다거나 새로운 등록처를 인가한다거나 하는 미 정부의 직접 개입은 배제되고, 이런 일들은 새로운 민간 부문 조직으로 넘겨졌다. 한편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WIPO)에게 도메인 네임 상표분쟁에 대한 해결 방안 권고안을 제시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상표권에 대한 우려를 누그러뜨리고자 했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민간 부문 조직(New Co)을 위한 리더쉽을 발휘하도록 미 정부가 염두에 둔 것은 포스텔의 IANA와 ISOC/gTLD-MoU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Internation Forum on the White Paper(IFWP)은 White Paper의 '민간부문 이양' 발표에 고무되어 자발적으로 구성된 국제적 모임이었다. 그러나 IFWP를 통해서도 IANA, NSI 등 이해가 상충하는 당사자들을 모두 불러 모으지 못했고, 따라서 광범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결국 New Co인 ICANN은 IANA/ISOC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임시 이사회는 사실상 포스텔이 지명한 인사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특히 CEO/President인 Roberts는 ISOC의 멤버였다.
}}
NSI는 강력한 반대자로서의 지위를 지켰다. NSI는 도메인 네임과 루트 서버 시스템에 대한 통제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NSI는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과의 '협력협정' 하에서 DNS에 대한 관리를 수행했다. NSI는 .com, .net, .org 데이터베이스를 독점적으로 통제하는 등록처의 역할과 함께, 사용자로부터 도메인 네임 등록을 받는 '등록대행처' 업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따라서 가격과 계약 내용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런데 White Paper에서는 NSI의 지위와 관련된 내용이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DNS는 민간 부문에 의해 이해 당사자 간의 자발적인 계약을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모호하게 언급했을 따름이었다. 여기서 그 책임과 역할을 맡는 민간 부분이란 New Co이며 이는 사실상 ICANN이다. 따라서 DNS의 관리는 정부와의 계약 관계 하에서 ICANN이 되는 NewCo 간의 계약 관계 하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이 이행과정에서 NSI는 '걸림돌'이었으나,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과정은 모호했다.
1999년 6월, ICANN과 DoC간의 MoU에서는 DNS 업무의 민간이양(즉 ICANN으로의 이양)을 구체화했다. MoU에서는 특정 DNS 기능에 대한 관리 책임을 민간으로 이전하는 데 필요한 메카니즘, 방법, 절차를 협력적으로 발전시키고 시험할 것"을 합의했다.
또한 상무성과 NSI는 계약을 갱신하여 NSI는 DNS에 대한 '등록 공유 시스템(Shared Registration System; SRS)을 구축하도록 했다. 등록 공유 시스템을 통해 복수의 경쟁하는 회사가 동등한 자격으로 등록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NSI는 여전히 등록처와 등록대행처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1999년 3월, ICANN에서는 등록대행처의 '인가'에 대한 기준 발표했다. '등록 인가 가이드라인(registration accrditation guidelines)'에서는 등록대행처의 재정적 사업적 자격을 명시했다. 등록처는 ICANN에 5천 달러의 요금과, 도메인 네임 당 1달러의 요금을 내야 한다. 또한 WIPO의 권고안에 따라, 인가 계약은 상표권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조치가 포함되었다. 선지불 등록, 특정 도메인 네임에 대한 ICANN의 유보 권한 등이 포함되었다. 1999년 4월, ICANN은 등록 공유의 시험기간동안 5개의 등록대행처를 인가하여 본격적으로 경쟁에 참여하도록 했다.
같은 달, Doc와 NSI 간에는 인가 등록대행처와 NSI 간의 관계를 규제하는 합의가 도출되었다. 상무성은 등록의 'wholesale' 가격을 도메인 네임당 9달러로 규제하였다. 등록대행처는 SRS 소프트웨어를 설비를 위해 NSI에 1만 달러의 요금을 지불하도록 했다. NSI는 여전히 gTLD 등록을 쥐고 있었고 등록처와 등록대행처 서비스를 동시에 행했다.
결과적으로 ICANN이 도메인 네임 루츠 서버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NSI를 포함한 다른 모든 등록처는 ICANN으로부터 면허(license)를 받으며 모든 등록대행처는 ICANN에 의해 직접 승인(accredit)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NSI가 ICANN의 인가계약을 승인하는 것은 gTLD 등록에 대한 독점적 통제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언제 승인하는가 또한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일단 승인을 하고 나면 NSI의 협상력은 제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ICANN, DoC, NSI 간의 갈등은 격화되었다.
NSI는 당연하게도 ICANN과의 계약을 거부했다. 원래의 협력협정은 모호한 점이 있었는데, 협정이 끝나면 NSI는 데이터베이스의 사본을 상무성/NTIA에 제출하기로 되어있었으나 이것이 NSI의 등록업무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무성과 ICANN의 입장에서 보면 등록업무는 재할당되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NSI의 입장에서 보면 zone files의 보유자로서 정부의 감독없이 gTLD를 계속 운영할 수 있는 것이었다.
ICANN은 50개 이상의 등록대행처에게 허가를 내주었으나 NSI와의 계약이 난항을 겪는데다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NSI의 의도와 기술적인 문제까지 겹쳐, 6월에 완료될 예정이었던 시험기간은 계속 연장되어 경쟁 도입은 지연되었다. NSI는 원래 1999년 6월까지 도메인 등록 업무의 시장경쟁의 기반이 되는 Shared Registration System; SRS을구축하기로 했으나 1999년 9월말까지로 연장되어 도메인 등록 업무의 경쟁 도입은 실질적으로 지연되었다.
또한 상표권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로서, NSI가 ICANN의 등록대행처 인가계약을 승인하여 여러 등록대행처 중 하나가 되는 과정이 지연됨으로써, 등록대행처 인가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UDRP에 관한 내용 또한 실효를 발휘하지 못하였다.
NSI의 로비로 하원 상업위원회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고, ICANN의 지도력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었다. ICANN에 대한 비판자들과 NSI는 선출되지 않은 임시 이사회가 너무 많은 중요한 결정을 비밀스럽고도 성급하게 내리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결국 ICANN은 이사회를 공개하고, '세금'이라는 비난에 휩싸여 네임당 1달러의 요금을 부과하려는 시도를 선출된 이사회의 결정으로 미뤄 사실상 철회했다.

4. DoC, NSI, ICANN 간의 협정

1999년 8월, NSI는 DoC와 이른바 'DotComDirectory'에 대한 접근과 사용에 대한 제한을 없애기로 합의하는 등의 협상 과정을 통해 도출된 1999년 9월의 DoC, ICANN, NSI 간의 협정은 이전의 구상과는 크게 달라진 타협적인 것이었다.
이 협정은 NSI의 독점을 종결시키는 중요한 걸음을 내딛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NSI는 경쟁업체가 등록업무를 위해 확보해야 하는 메인 디렉터리에 대한 'wholesale price'를 내릴 고, 도메인 네밍 사용자가 등록을 옮길 때 아무런 페널티가 없도록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DoC와 NSI 간의 계약은 또다시 연장되었고 NSI는 등록처와 등록대행처의 지위를 여전히 유지하여 여전히 독점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합의에 따르면, NSI는 4년 동안 .com, .net, .org 도메인에 대한 등록처로서의 계약을 유지하고, 만약 등록처 업무를 포기하고 등록대행처로 기능할 경우 계약을 4년간 더 연장시키기로 했다.
또한 ICANN이 NSI에게 새로운 정책을 부과할 때는 이 문제를 다루는 ICANN의 회원 조직의 2/3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ICANN으로서도 ccTLD의 문제, 새로운 gTLD의 도입 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6백만 도메인 네임의 확보하고 있는 NSI와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타협은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NSI가 ICANN을 인정하고 완전 경쟁이 도입된다면 ICANN의 지위는 한층 안정화되고 상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협정은 '잠정적'이라는 단서가 붙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결국 도메인 네임 관리의 민간이양이라는 미 정부의 계획은 DoC와 NSI 간의 계약이 연장됨으로써 실현되지 못했다. 타협안의 핵심은 DoC와 NSI 간의 계약 연장이었으며, NSI의 의무가 무엇인가에 대한 타협안을 도출하는 데 있어서 ICANN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이 협정은 민간 법인으로서 ICANN의 권위는 미 정부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설적인 사례였다.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NSI는 ICANN을 인정하고 ICANN과의 '등록처 협정'에 따라 gTLD 등록처(.com, .net, .org)를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ICANN은 4년 동안 NSI를 gTLD 등록처로서 면허하기로 합의했다. NSI가 18개월 이내에 등록대행처 기능으로부터 등록 업무(registry)를 완전히 제거하면, 등록처 계약은 4년간 연장된다.
= NSI는 ICANN 공인 등록대행처로부터만 도메인 네임 등록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 NSI는 얼터너티브 DNS 루트 서버 시스템을 만들지 않기로 합의했다.
= NSI의 wholesale 등록처 가격은 2000년 1월 15일부터 네임당 1년 9달러에서 6달러로 인하된다.
= NSI의 'retail' 등록대행처 가격에 대한 규제는 해제된다(Cooperative Agreement에 의해 네임당 1년 35달러로 고정되어 있었다).
= NSI는 ICANN에 125만 달러의 등록처 대행처 요금을 선납한다.
= NSI는 미 상무성의 지시에 따라 authoritative 루트 서버 시스템을 계속 운영한다.

또한 새 협정에 따른 ICANN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 ICANN은 새로운 권위를 행사하는 데 있어서 특정한 절차적 제한을 따라야 한다. 많은 결정은 지원기구 평의회의 2/3 이상이 필요하다.
= gTLD 등록처에 대한 ICANN의 정책 권위는 다른 등록처들을 집중화된 계약 체제 내로 끌어들여서 그 결과 NSI가 경쟁에서 불이익을 갖지 않는다면 종결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ccTLD 등록처에도 해당된다.
= ICANN이 등록대행처에 부과하는 요금은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하며 요금의 2/3를 내는 등록대행처에 의해 승인되어야 한다. 이는 NSI에게 ICANN의 '과세' 정책에 대한 상당한 영향력을 부여할 것이다.
= NSI가 ICANN에 지불하는 등록대행처 요금액은 200만 달러를 넘지 못한다.

여기서 미정부(상무성)은 루트 서버에 대한 최종적인 통제권('정책적 권위')을 여전히 보유하게 되었다. 민간이양에 대한 애초의 계획은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셈이다. 따라서 계약 내용은 '자율규제'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계약은 최장 8년까지 연장될 수 있었는데, 따라서 이 기간동안 상무성은 등록비를 직접 정하는 등의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그동안 미 정부의 비일관된 정책 결정의 결과물이었다. 규제에서 탈피하여 민간 부문으로 이양한다는 말과 핵심 데이터의 재산권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는 것은 명백히 모순된다.
쟁점은 결국 쟁점은 매스터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소유권을 누가 갖는가, NSI의 재산인가 아니면 DoC의 궁극적인 통제권을 갖는가, ICANN이 새로 넘겨받는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미 정부와 DoC는 인터넷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고육지책으로 DNS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을 사실상 연장했고, NSI, ICANN과 타협적인 협정을 맺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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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역사

인터넷의 역사
[ 2006.12.16 03:55:47 ]
글쓴이  
표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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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소련의 스프트닉 위성 발사 성공은 미국에 매우 강한 도전이었다. 당시 냉전 체제에서는 이 사건을 기술적 측면보다는 군사적 측면에서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한 나라의 기술력은 국방력과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 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라는 연구 기획 및 관리 조직을 만든다.

ARPA는 후에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로 확대 개편되는데, 역시 국방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부문 연구를 총괄하였다. ARPA는 18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위성을 띄우는 업적을 보였으며, 컴퓨터와 통신 기술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초기 인터넷은 MIT 대학 소속의 인물들의 주도로 잉태된다. 1962년 APRA의 컴퓨터 부문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로 부임한 MIT의 릭리더(Licklider)는 인터넷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예언자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미국내의 컴퓨터들이 모두 연결되어 멀리 떨어진 곳의 컴퓨터의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주고 받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릭리더는 자신뿐만 아니라 후임 책임자들에게도 자신의 꿈을 전했고 확신시켰다. 컴퓨터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군수용 민간 부문에 대한 연구 투자를 대학 중심으로 이전하는 큰 변화를 주도한다.

릭리더가 ARPA를 이끌기 직전인 1961년 MIT의 클라인락은 인터넷의 기술적 초석인 패킷 스위칭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다. 패킷 스위칭은 컴퓨터 사이의 정보 교환을 위한 연결 방식이다. 전화망이 사용하는 회선 스위칭(circuit switching)은 통화 당사자들의 두 지점을 고정적으로 연결해 놓지만, 패킷 스위칭은 정보를 패킷 단위로 인접 컴퓨터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우체국을 통해 우편물이 전달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1965년 매사츄세츠주와 캘리포니아주를 전화선으로 연결한 원거리 컴퓨터 네트워크가 실험되었는데, 이 실험을 통해 원거리 컴퓨터 통신의 가능성과 패킷 스위칭의 필요성이 확인된다.

1966년부터 DARPA를 이끌었던 MIT의 로버츠는 인터넷의 시초가 되는 알파넷(ARPANET)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데, 밥 칸에 의해 그 설계가 구체적으로 진행된다. 릭리더의 환상은 1969년에 첫 결실을 본다. 미국 UCLA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클라인락이 세운 네트워크 측정 센터가 알파넷의 첫 노드로 선정된다.

클라인락의 패킷 스위칭 분야의 공로가 인정받은 것이다. UCLA 다음으로 스탠포드 연구소(SRI, Stanford Re-search Institute), 뒤이어 유타 대학과 UCSB(산타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가 추가되어 알파넷의 최초 연결이 선보이게 된다.

1972년에 열린 컴퓨터 커뮤니케이션 컨퍼런스에서 칸의 주도로 알파넷이 처음 시연된다. 워싱턴 힐튼 호텔의 지하실에서 미국 전역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보였다. 1972년에는 이메일이 개발된 해이기도 하다. 이메일의 역사는 인터넷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1972년부터 1983년은 현재 인터넷의 기본 구조를 이루는 TCP/IP 통신 프로토콜이 완성되는 시기이다. 통신 프로토콜은 두 컴퓨터 사이의 약속된 정보 교환 절차를 뜻한다. 1972년 DARPA로 옮긴 칸은 1973년 스탠포드 대학의 빈스 서프에게 서로 분리되어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들을 연결하기 위한 개방형 통신 체계에 대하여 연구하기 위한 팀의 구성을 제안한다.

최종적인 목표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분리되어 형성되어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하나로 연결하는 데 있었다. 각각의 지역 네트워크의 내부 구조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미국 전역에 산재해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끼리 연결하는 일종의 컴퓨터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체계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인터넷의 기술적 초석인 TCP/IP 라는 개방형 통신망 프로토콜이 완성된다.

우체국을 통해 해외의 친구에게 우편물을 보낼 때 내용물을 준비하여 봉투에 담고, 주소를 기록하여 동네 우체국에서 부치면, 집중국으로, 중앙 우체국으로 전달되고 상대국 우편망을 통해 친구 가정까지 배달되면, 친구는 우편물 받아 개봉하여 읽고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오는 과정이 바로 TCP/IP 프로토콜이 관장하는 절차와 거의 같다. 인터넷이란 단어의 뜻은 네트워크와 네트워크 사이란 뜻인데, 네트워크와 네트워크를 연결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유래되었다.

1983년 1월 1일 알파넷의 프로토콜은 전부 TCP/IP 프로토콜로 바뀐다. 알파넷에 연결된 모든 컴퓨터의 프로토콜 담당 프로그램을 일시에 바꾼 것이다.

TCP/IP 프로토콜이 무르익는 동안에 인터넷은 구성에도 큰 변화를 겪는다. 80년대 초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PC와 동급의 소형 컴퓨터들은 지역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들끼리 지역망(LAN, Local Area Network)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PC와 LAN 기술의 발전은 인터넷의 구성을 소수의 대형 컴퓨터 중심의 연결 체계에서 다수의 PC급 소형 컴퓨터들이 분산되어 있는 형태로 변화시켰고 그와 같은 추세로 지금까지 발전되고 있다.

지역망은 대학이나 연구소뿐만 아니라, 일반 사무 환경에까지 컴퓨터 네트워크를 확산시켜, 이메일, 전자 결제, 전화 교환 같은 사무 자동화와 네트워크를 통한 시스템 통합(SI, System Integration),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발전의 촉매 역할을 하였다. LAN은 다시 라우터라고 불리는 장비를 통해 인터넷과 연결되는데, 여러 가지 형태와 기술을 사용하는 다양한 LAN들을 서로 연결하는 데에는 TCP/IP와 같은 개방형 통신 프로토콜이 반드시 필요했고, 따라서 인터넷 확산이 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86년부터 1995년까지 사이에는 인터넷의 형성이 완성되는 시기이다. 미국 과학 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은 이 기간에 2억불 가량의 돈을 쏟아 부으며 컴퓨터 네트워크 연구와 사용 활성화를 주도하였다. 1985년 연방 정부의 지원 없이도 독자 생존이 가능한 교육과 연구 기관들을 연결하는 정보 인프라 구성을 목표로 NSFNET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NSFNET 프로그램은 TCP/IP 프로토콜을 표준으로 삼아 더욱 확산되게 하였고, 독자 생존을 위해서는 인터넷의 상업화 전략을 추진하였다.

1995년 NSF는 NSFNET의 기간망의 지원을 중단하고, 민간 회사에서 구축하는 망을 사용하게끔 유도하는 일로 상업화 작업을 일단락 시킨다.

요즘은 인터넷을 월드 와이드 웹(WWW, World Wide Web)을 가장 많이 접하고 있어 WWW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려고 한다. “인터넷 = 홈페이지” 등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홈페이지는 WWW에서 어떤 한 개인이나 기관의 대표 하이퍼텍스트 파일(hypertext file)을 뜻하는 것이다.

WWW는 하이퍼텍스트 교환 프로토콜(HTTP) 기반의 정보 인프라로서 인터넷 위에 구축되어 있다. 하이퍼텍스트는 일반 파일과 달리 구조를 갖는다. 구조를 갖는다는 의미는 서로 관련있는 부분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고, 다른 파일과도 연결되어 있어, 원하면 연결을 따라 관련 정보로 이동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한편 일반 파일은 실과 같이 한 줄로 이어진 문자열로 볼 수 있다. 원래 하이퍼텍스트는 같은 컴퓨터 안에서 활용하게끔 의도되었는데, 이런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게 한 것이 WWW이다.

즉, 어떤 파일과 연관 있는 다른 파일이 인터넷 어느 곳에 있든지 하이퍼텍스트 연결이 가능하게 한 것이 WWW이다. 넷스케입이나 익스플로러는 이런 하이퍼텍스트를 인터넷 상에서 뒤지는 (browsing) 도구이다. WWW는 유럽의 CERN(핵물리 연구소, 소립자 연구가 활발하다)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발전되었다.

미국의 TCP/IP 기반 인터넷 기술이 유럽에 들어 가면서, 세계 각처의 과학자들을 엮어 협동 연구를 하고, 연구 문서 교환을 원활히 하기 위해 1989년 팀 버너스-리가 제안하고 주도하여 WWW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온 인터넷을 웹이 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1995년 10월 24일 미국 연방 네트워킹 평의회(FNC, Federal Net-working Council)는 인터넷 (Internet) 이란 용어의 정의를 결의한다. 문자적으로 보면 소문자 i로 시작하는 인터넷에서 대문자 I로 시작하는 인터넷으로 바뀐 것이지만,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네트워크와 네트워크의 상위 개방형 연결 형태를 지칭하던 것에서 거대한 통신망의 실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인터넷은 1992년 체제를 갖춘 ISOC (Internet Society)에 의해 운영된다고 보면 된다. ISOC에는 IAB(Inter-net Architecture Board)와 IETF(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 두 개의 주요 조직이 있는데, IAB는 교회의 당회에 해당하는 조직이고, IEFT는 집사회에 대응된다. 프로토콜 표준화와 같이 기술적인 내용을 IETF가 연구하여 결정하면, IAB에서 이를 인정하고 널리 쓰이게 한다.

미래의 인터넷은 어떤 모습일까? 미래 사회의 기술 주역은 컴퓨터, 통신, 이동성, 멀티미디어 (Computer, Communication, Mobility, Multi-media) 이렇게 네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CCMM으로 기억하면 잊지 않는다. 컴퓨터와 통신의 기술은 이미 결합된 지 오래고, 계속 발전할 것이다. 사용자들은 움직이며 통신하며, 컴퓨터를 사용하기 원하고 있다. 발달된 통신망에는 문자위주의 정보뿐만 아니라 목소리, 음악, 영상, 동영상 등의 멀티미디어 정보들을 주고 받기를 원하고 있다.

요즘 휴대폰에는 이런 요소들이 이미 다 들어와 있다. 휴대폰은 무선 통신 능력이 있는 일종의 컴퓨터이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CCMM 체계가 발달되고 있으며, 인터넷이 그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다. 더 나아가 TV, 냉장고, 주방기구, 세탁기와 같은 가정의 모든 가전 제품들과 수도, 가스, 전기 관련 기기들도 인터넷에 연결되는 날이 올 것이다. 집 밖에서 거실의 에어컨을 작동시켜 들어 갔을 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게 하고, 조리 기구를 가동시키고, 원하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우유가 없으면, 냉장고 문에 붙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인근 수퍼에 배달 주문을 인터넷으로 보낼 수 있다. 수도, 전기, 가스 검침원은 역사 기록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많은 일이 실세계의 일과 연결되어 진행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현실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진행했던 일이 인터넷 상에서 간단히 해결된다. 인터넷 뱅킹이 대표적인 예이며, 이미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인터넷 뱅킹의 극단을 생각해 보면, 돈의 개념에 중요한 변화가 오게 된다. 사이버 머니는 형태는 없지만, 구매력을 지닌 엄연한 돈의 한 형태이다.

인터넷을 통한 서비스 제공, 전자 상거래, 사이버 머니를 이용한 결재 등은 세상을 변화시킬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꽃인 돈의 모습과 흐름 과정을 통째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제대로만 된다면, 가진 자들이 돈 갖고 장난 치는 일과 탈세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에는 완벽한 것이 없기 때문에 또 어떤 허점이 발견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CCMM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확산이 밝은 미래만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보안, 개인 정보와 사생활 보호, 윤리적 문제 등이 벌써 문제 되고 있다. 과거에는 집 문 단속만 잘하면 안심하고 잘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누가 내 컴퓨터에 침투하여 내 은행 계좌 번호를 알아내어 돈을 빼가지 않는지, 내 사적인 중요한 정보를 빼내가지 않았는지, 어제 작성한 보고서를 적대적 관계에 있는 회사에서 빼내가지 않았는지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자녀들이 게임 중독에 걸리지 않았는지, 불건전한 채팅에 빠져 있지 않는지, 포르노물에 빠져 있지는 않나 걱정해야 한다.

인터넷은 군사적인 동기와 목적으로 시작되어, 대학과 연구 기관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상업화를 통해 대중 일반에게 활짝 열렸다. 그 중심에는 협업 (collaboration) 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깃들여 있다. 발전 단계에서도 그랬고, 현재 사용하는 목적도 그렇다.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데 유용한 매체이다. 모이기를 힘쓰는 데에도 아주 유용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바벨탑일 수도 있고, 아직 정복되지 않은 가나안 땅일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땅끝까지 복음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이버 공간까지 의미하셨을까 궁금해 진다. 답을 듣지 않아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들어가 싸워 점령해야 하는 우리의 지경으로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음란한 세력과 우상 숭배자들과 한판 승부를 내야 하는 곳이다.

복음 전파의 강력한 매체로서 활용해야 한다. 정보 인프라가 없는 국가는 경쟁력이 떨어져 도태될 수 밖에 없음을 세계의 지도자들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어떤 나라의 지도자들이라도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 인프라를 수용하는 데 이견이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의견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정치 경제 문제 때문에 인터넷을 무시 못 할 것이다. 할렐루야! 인터넷을 타고 국경을 넘을 때에는 비자가 필요 없다.

인터넷 위에 구축되고 있는 가상 현실 세계와 실세계가 점점 구분이 없어지고 있는 이 때에 우리의 선교적 사명을 위해 과감히 사이버 공간을 침노해야 할 때가 무르익었다. 

2014년 8월 28일 목요일

웹이 죽어가고 있다.


“개방적이고평등한웹이죽어가고있다”


웹이 죽어가고 있다.
월드와이드웹이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다. 1990년 12월 평등주의를 기초로 탄생한 웹은 점차 덜 개방적이고 폐쇄적인 인터넷의 생태계로 편입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 리도 경고 메시지를 더욱 강한 톤으로 내뱉고 있다.
‘가디언’은 8월24일 ‘어떻게 웹은 자신의 길을 잃어버리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장문 기사를 내보냈다. 크리스 앤더슨, 찰스 리드비터, 팀 버너스 리의 최근 발언들을 인용해 위기에 처한 웹의 현재를 집중 조명했다. 웹의 개방성, 평등성을 위협하는 다양한 사례도 제시됐다. 하필 그 핵심에 페이스북이 놓여있었다.
팀 버너스 리(출처 : 위키피디아)
팀 버너스 리(출처 : 위키피디아)
1990년 겨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탄생한 월드와이드웹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떤 누구와 언제 어디서든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것이 웹의 정신이었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 정신은 지켜져왔다. 웹의 정신은 풀뿌리에서부터 공감을 얻으며 전 세계로 확장하는 토대가 됐다. 팀 버너스 리는 웹의 성장할 수 있도록 가장 큰 동력으로 ‘평등성’을 꼽았다.
“웹은 강력한, 그리고 유비쿼터스적 도구로 진화해왔다. 그것은 평등주의적 조건 위에서 구축됐기 때문이고,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의 부분으로서 수천명의 개인과 대학, 기업이 독립적이면서도 함께 작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디언’은 웹의 평등주의 정신이 서서히 뒤로 밀려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웹이 가져다줄 긍정적인 미래의 잠재력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고도 했다. 웹에서 여성 혐오주의가 확산되고, 보복성 포르노와 같은 악성 범죄가 늘어나고 있으며 기업과 정부의 감시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뿐만 아니라 인종주의를 비롯해 각종 부정적인 글들이 넘쳐나는 현실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상황에 왔다고 말한다.
모바일의 확산도 웹엔 위기 요소다. 크리스 앤더슨의 말처럼 “우리는 웹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웹이 개방과 평등을 상징한다면 모바일은 준폐쇄적 인터넷이라는 공간적 의미를 지닌다. 웹만큼 열려있지 않고 평등하지도 않다. 모바일 시대로의 전환은 웹의 위축을 가져오고 있고, 그러한 경향성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그것이 크리스 앤더슨이 말하는 ‘웹의 죽음’이다.
특히 ‘가디언’은 웹과 페이스북을 대척점에 세워놓았다. 페이스북의 감정조작, 감시 시스템, 광고 모델 등은 웹의 정신과 배치된다는 의미에서다. 런던북리뷰의 편집자인 토마스 존슨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페이스북의 이용자가 아니라 페이스북의 상품일 뿐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웹 창시자마저도 페이스북에 경고
최근에는 팀 버너스 리도 페이스북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그는 인터넷닷오아르지를 추진하고 있는 페이스북을 향해 “페이스북닷컴으로만 가게 하는 휴대폰을 만들 엄두도 내지 마라”고 경고했다. 인터넷닷오아르지는 마크 주커버그가 “연결이 곧 인권”이라는 명분으로 추진 중인 저개발국 인터넷 연결 프로젝트다. 페이스북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통신사들과 협력하고 있다.
현재의 웹은 분명 팀 버너스 리가 의도했던 방향과는 멀어지고 있다. 모든 기술이 설계자의 의도대로 진화하진 않지만, 지금의 웹은 초기의 정신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어 우려를 증폭시킨다. 오죽하면 팀 버너스 리가 “웹이 조지 오웰의 우려 이상으로 감시를 촉진시키는 기술이 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을까. 지금 웹이 처한 위기 상황을 대변하는 씁쓸한 풍경이다.
http://www.bloter.net/archives/203986
블로터닷넷 매거진 팀장입니다. 이메일은 dangun76@bloter.net 트위터는 @dangun76 을 쓰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웹은 죽지 않았다. 아직은

‘아직’은

웹은 죽지 않았다. 아직은 
“웹은 죽었다”.
‘인터넷에서 작은 수요들이 합쳐 큰 시장을 이루고’, 그것이 아마존 등 소위 웹 2.0 기업의 성공을 도왔다는 ‘롱테일’의 저자 크리스 앤더슨. 그는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와이어드’에 지난 8월 17일 위와 같은 도발적 제목의 글을 실었다. 해당 글은 그 제목의 선정성 만큼이나 발표되자 마자 미국 언론계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국내 언론도 이를 소개한 바 있다.
웹이 죽었다는 근거는 1990년대 들어 웹 브라우저 붐을 타고 급상승하던 웹의 트래픽이 2000년대를 지나면서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해 2010년에는 약 23%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이 이제는 모바일, 태블릿 PC 혁명으로 성장한 ‘앱’ 뿐만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등이 구축하고 있는 자체 콘텐츠 소비 플랫폼에게 인터넷에서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웹’에 대한 ‘앱’의 위협에 앞서 구글, 페이스북 등의 자체 콘텐츠 소비 플랫폼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주장의 배경은 근거리 통신망인 이더넷을 발명한 밥 멧칼프의 ‘멧칼프의 법칙’ 때문이다. 이 법칙은 ‘네트워크의 효용성은 이용자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데, 이 틀에서 보면 네트워크 경제에서 ‘규모의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이용자 수가 2배 많다는 것은, 2배가 아니라 4배 더 가치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구글이 ‘개방’성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오픈’을 독점해 온라인 광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 구글의 최대 라이벌로 부상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5억 이용자가 갖는 진정한 위력이 무엇인지 이해가 된다.
물론, 여기서 ‘왕의 귀환’에 성공한 스티브 잡스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과거 PC 대전에서 MS와 IBM의 공동 전선에 밀려 할리우드로 유배당했던 잡스는 그 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의 남과 북,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를 융합할 수 있는 지혜를 축적했다. 그 내공으로 선보인 것이 전설의 ‘아이’시리즈의 선두를 차지한 ‘아이팟’이었다.
그러나 아이팟으로 MP3 시장을 석권한 신화의 근본은 ‘아이튠즈’에 있었다. 미디어 산업계는 냅스터(Napster), 카자(Kazza) 등 P2P 파일공유 사이트들과의 전쟁에 힘이 빠졌고, 공짜이긴 하지만 질이 떨어지는 자료들 사이를 뒤지고 다녀야 하는 P2P 소비자들이 지쳤다는 것을 잡스가 제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잡스는 그 사이에서  정보재 거래를 위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균형점’을 ‘아이튠즈’로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튠즈’ 모델은, 아이폰의 ‘앱스토어’ 모델을 통해서 음반 시장을 넘어 통신 시장으로 확대되었고, 이제는 ‘아이패드’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출판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마찰없는 경제’인 인터넷의 폭팔적 잠재력은 누구나 가늠하고 있었지만, 그 것이 어떻게 기존 산업계를 뒤엎을 ‘파괴적 혁신’으로 등장할 지는 누구도 쉽게 그 답을 내놓지 못했는 데, 그 답을 돌아온 황태자 스티브 잡스가 제시한 것이다.
콘텐츠 공급자에게 던지는 잡스의 충고는 이것이다. “수익성을 원한다면, 이제는 웹을 버리고 앱으로 오라.”
사실 그 선택이 매력적인 것은 이용자도 사실이다. 더 적은 시간을 들여, 더 안전하게, 원하는 기능과 서비스가 충족될 수 있다면, 굳이 앱이 아니라 웹을 쓸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웹’이냐 ‘앱’이냐가 아니라 ‘더 큰 효용’이기 때문이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함께 손을 잡고 추는 춤이니, 웹에서 앱으로의 역사적 이동은 환영할 만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먼저 이 이동이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직’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첫째, 앤더슨이 “웹은 죽었다”고 선포한 당일 반박문을 기고한 뉴욕타임즈의 닉 빌톤도 지적한 것처럼, 앤더슨은 통계 자료를 잘못 해석했다. 인터넷 트래픽에서 웹의 비중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그 동안 인터넷 전체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 ‘이용 행태’도 획기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즉, 인터넷 상 웹의 이용 ‘비율’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동안 웹의 절대 ‘사용량’도 증가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용 형태’면에서 볼 때, 잡스가 아이튠즈, 앱스토어 모델을 통해 온라인 정보재 거래의 새로운 경제적 균형점을 만들어 준 덕분으로 P2P에 대한 이용 비율이 감소하긴 하지만, 대신 ‘비디오 이용률’이 급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용자들이 웹보다 앱을 더 이용함에 따라 웹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앤더슨의 주장에서 맹점을 찾을 수 있다.
그 맹점을 찾기 위해 먼저 이 비디오 콘텐츠 증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자. 앤더슨이 해당  글에서 주요 논거로 사용했던 멧칼프 이론의 창시자 밥 멧칼프는 비디오 콘텐츠가 인터넷에서 공유되는 것을 다음 세기 인터넷의 가장 주요한 변화로 주목한 바 있다.
그 이유는 간명하다. 주로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 공유를 목적으로 하던 인터넷이 기술 혁신에 힘입어 음성을 넘어 이제 비디오를 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인터넷은 기존의 방송, 음반, 출판 등 콘텐츠 유통망을 모두 통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부각되고 있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이 출판시장이나 TV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이같은 IT와 미디어, 그리고 문화산업을 통합할 인터넷의 잠재성 때문이다.
앤더슨은 또 IT와 미디어, 그리고 문화산업 통합이라는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서 과거 미디어 산업의 공룡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현재 주요한 플랫폼을 쥐고 있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도 동일한 ‘독점적 형태’를 보일 것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들이 ‘독점적 형태’를 보임에 따라 인터넷은 ‘웹’의 천하통일이 무너지고, 수 개의 플랫폼으로 분할되어 통치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이용자 수에 따라 네트워크의 효용성이 제곱으로 증가한다는 맷칼프의 법칙에도 불구하고, 초기 인터넷 제왕이었던 야후 이래 인터넷은 수없이 그 승자를 갈아치워온 날카로운 경쟁의 무대였다. 애플을 제외한 구글, 페이스북 등은 다 인터넷의 새로운 강자들이다. 잡스 이후의 애플,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위협적인 서비스를 내놓지 못한 구글, 끓임없이 새로운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페이스북 역시 미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전통적인 미디어 산업의 공룡들은 ‘콘텐츠’ 뿐만 아니라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었는 데, 그 플랫폼의 ‘성격’이 다르다.  예컨대, 방송망, 전화망 등은 가입자가 쉽게 이탈할 수 없는 ‘물리적’ 환경이다. 그리고 초기에 그 같은 ‘망’ 구축에 상당한 비용 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에 자본금이 빈약한 신생기업이 덤빌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구글,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 기반이 되는 인터넷은 다르다. 인터넷 위에 또 다른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용자들을 강력하게 구속하기는 어렵다. <인터넷 권력전쟁>(Who Controls the Internet)의 저자이자 콜롬비아 로스쿨 교수인 팀 우가 지적한 것처럼, 인터넷은 초기 인터넷 아버지들의 ‘망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에 따라서 ‘모든 콘텐츠를 동일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에 수 억의 이용자를 보유한 온라인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다른 인터넷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콘텐츠와 본질적인 차별성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둘째, <인터넷의 미래 그리고 어떻게 그 것을 멈출 것인가>(The Future of the Internent and How to Stop It)의 저자이자 하버드 로스쿨 교수인 조나단 지트레인이 지적한 것처럼, PC가 인터넷 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인터넷은 과거 미디어의 행태를 답습하기는 어렵다. PC는 일반적 목적(general purpose)에 따른 ‘열린 창조성’(generativity)을 가진 기계이기 때문이다. 즉,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된 PC는 제품 설계자가 설계한 목적 이외에 다른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킬러 어플리케이션이었던 이메일을 비롯해 웹 등 수많은 기술적, 사회적 혁신이 나올 수가 있었다. 따라서 이 PC 기반의 인터넷 생태계가 보존되는 한, 인터넷은 여전히 새로운 미래에 열려 있고, 인터넷의 개방성이 유지되는 한 웹은 다를 것이다.
사실 이러한 특성이, 지난 수 년 동안 인터넷 강자들이 독점적 플랫폼을 만드려는 것을 막아왔다. 구글, 페이스북은 과거의 전기, 수도, 철도와 같은 인프라가 ‘유틸리티’가 된 것 처럼 자신들의 서비스를 유틸리티화함으로써 인터넷 환경에서 자신들의 사업 안정성을 높이려 한다. 그러나 전기, 수도, 철도와 IT 인프라가 같을 수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PC 기반 인터넷 생태계는 ‘이용자 활용력’에 따라 ‘그 응용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틸리티가 되더라도, 그것은 이용자를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고, 이용자를 배제할 수 없다면, 그 이용자들이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을 원하는 한,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웹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이란 수식어가 필요하다.
웹을 죽이는 방법은 있다. 웹의 지속적 혁신성을 지켜주고 있는 기본 아키텍처의 핵심들을 무너뜨리면 된다. 그리고 그 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먼저 “모든 콘텐츠는 넷상에서 동일하다”는 ‘망중립성’의 원칙을 깨고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 영역의 강자가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업자들과 거래를 맺는 것이다. 망은 앞서 말한 진입 장벽이 높은 사업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독점 내지 과점 상태다. 미국은 AT&T와 버라이존으로 양분되어 있고, 한국은 KT다. 인터넷 기업이 진정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을 배제한 새로운 플랫폼을 원한다면 망 사업자와의 제휴가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들의 독점력을 빌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구글이 버라이존과 추구한 모바일 웹에 망 중립성을 배제하려는 시도를 한 바가 있다. 유튜브 콘텐츠의 전송 우선권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그 복중의 계산으로 추측된다.
다음으로는 지금의 PC 단말기(end-point)가 기반이 된 웹 생태계를 모바일, 태블릿 단말기 기반 생태계 혹은 닫힌(lock-in) 단말기 생태계로 대체하면 된다. 애플의 iOS 진영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진영이 맞서고 있는 스마트폰 전쟁의 불이 꺼지지 않고, 아마존의 전자책 판매고가 종이책을 추월하고, 139달러짜리 보급형 킨들을 발표하고, 아이패드가 없어서 못 파는 현상이 지속되면 이 ‘대체의 미래’는 멀지 않은 내일일 것이다. 이것은 IT 인프라가 전기, 수도, 철도와 크게 ‘다를 바가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할 뿐, 그것을 통해서 무언가 새로운 ‘창조’를 해내는 자유를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플랫폼 안에서도 어느 정도 창조가 이루어질 수는 있으나, 적어도 온라인 상에서는 해당 플랫폼 제공자의 ‘허락’에 따른 ‘제한된 혁신’일 뿐이다.
따라서 웹은 아직 죽지 않았다. 앤더슨의 주장은 도발적이었지만, 놓친 것이 많았다. 그는 웹의 이용 비중이 감소하는 것은 제대로 짚었지만, 그 절대적 이용량은 증가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비디오 이용량 증대가 IT와 미디어, 문화산업을 융합하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은 바로 봤지만, 플랫폼 구축을 통한 콘텐츠 소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기반한 플랫폼과 콘텐츠 산업의 수직 통합은 구속력이 약하다는 점을 놓쳤다. 나아가 여전히 ‘열린 창조성’(generativity)이라는 일반적 목적을 위한 단말기인 PC가 웹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있는 한 웹의 기반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무시했다.
그러나 ‘아직’일 뿐이다. 망 중립성의 원칙을 위반한 콘텐츠 제공 업체와 망 제공 업체의 결탁은, 새로운 기업이 인터넷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장벽을 높이고 있다. 모바일, 태블릿의 대량 공급과 시장 확대에 의해서 PC 중심 웹 생태계가 닫힌 단말기에 기초한 웹 생태계로 변화하고 있고 IT 인프라는 전기, 수도 등의 인프라와 유사해지고 있다.
그래서 ‘아직’ 일 뿐이다. 우리가 진정 인터넷 네트워크의 ‘망 중립성’, 인터넷 단말기의 ‘열린 창조성’(generativity) 등 오늘날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과 질서를 간과한다면 웹 죽이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는 ‘웹이 죽는다’는 사실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월드 와이드 웹(WWW)이라는 것은 1990년대에 당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재직하던 팀 버너스 리 경이 인터넷상 문서 공유의 편리를 위해 만든 어플리케이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웹은 ‘망 중립성’과 ‘열린 창조성’의 원칙이 지켜졌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된 PC라는 단말기를 통했기 때문에 팀 버너스 리는 해당 어플리케이션을 ‘허락없이’ 제조할 수 있었다. 또 그 ‘웹’ 자체가 문서의 편집과 공유를 통한 재창조에 ‘아무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불과 20년 만에 전세계로 확산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열린 창조성’ 원칙의 힘이다.
나아가 인터넷의 모든 콘텐츠는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는 ‘망 중립성’ 원칙이 웹에 그대로 적용이 되었기 때문에, 웹은 창조와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경쟁이 평등한’ 플랫폼이 될 수 있었다. 그 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구글, 페이스북 등의 신흥 강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앱이 웹을 죽인다면, 새로운 ‘소비’ 콘텐츠 플랫폼이 웹을 죽인다면, 그 것은 ‘웹의 종말’일 뿐 아니라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지속되어 왔던 ‘개방에 의한 혁신’과 ‘공유에 의한 창조’에 일퇴가 가해지는 것이다. 그들이 바꾸는 것은 웹 이후 새로운 플랫폼일 뿐 아니라, 웹을 통해 부상한 ‘창조의 패러다임’이 ‘소비의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웹이 죽는 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것은 웹이 죽은 후, 또 다른 웹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애초에 막으려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 창조성과 망 중립성이 사라진 곳에는, 더 많은 소비를 위한 플랫폼만이 잔존할 뿐이다. 더 많은 개인 정보가 수집되고, 광고 등 상업적 목적을 위해 활용될 뿐이다. 사실, 이 것이 로렌스 레식 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코드와 다른 사이버 공간의 법들>(Code and the Other Laws of Cyberspace)에서 지적한 인터넷의 미래였다. 인터넷은 무한한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자유는 ‘코드’라는 ‘아키텍쳐’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으므로, 인터넷을 상업화하려는 세력이 그 ‘코드’를 변경할 경우, 자유는 충분히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현실’이다. 그 같은 ‘자유’는 ‘공기’와 같아서 막상 있을 때는 그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인터넷의, 웹의 ‘자유’를 너무 당연히 생각했기 때문에 그 것이 ‘소비’와 ‘편리’의 이름으로 감소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기’가 사라진 후에도, ‘자유’가 극히 감소한 후에도,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따라서 다시 논의의 핵심은 ‘웹의 죽음’이 아니다. 웹이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탄생과 소멸은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에 ‘또다른 웹’이 태어날 생태계가 지금의 환경이냐는 것이다.
아직 웹이 죽지 않았을 때, 인터넷의 개방성이 그 명맥을 유지할 때인 지금이 나의 인터넷을, 웹을 지키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때다.
http://www.bloter.net/archives/37161
  • 기술이라 쓰고 인간이라 읽는 정치학도. 네이버 서비스 자문위원을 맡은 적 있고, 스타트업에서 매니저로 일한 바 있다. 블로터닷넷과 주간경향 등에 IT 칼럼을 기고하고, 쓴 책으로는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 '소셜 웹 혁명','소셜 웹이다'가, 번역한 책으로는 '열린 정부 만들기' 등이 있다. 쓴 글에 대해 더 깊은 논의를 원하시는 분은 visiondesigner21@gmail.com 으로 저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면 된다.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The City as Interface

    The City as Interface

    Martijn de Waal

    208 Pages,  Feb 4, 2014


    Introduction 6
    The Future of the City: a Smart City or a Social City?
    Chapter 1 26
    Pendrecht: a Brief History of the Parochial Domain
    Chapter 2 48
    The Neighbourhood as an ‘Interface’ in Daily Life
    Chapter 3 66
    Digital Media and the Parochial Domain
    Chapter 4 90
    The Eternal Crisis of the Public Domain
    Chapter 5 116
    Schouwburgplein: the Public Domain in Practice
    Chapter 6 134
    Digital Media and the Public Domain
    Conclusion 168
    The City of the Future, The Future of the City
    Notes 178
    Bibliography 195
    Blogs 205
    Acknowledgements 206
    Credits 208

    The city of the future

    Digital and mobile media are changing the way urban life takes shape and how we experience our built environment. On the face of it, this is mainly a practical matter: thanks to these technologies we can organize our lives more conveniently. But the rise of ‘urban media’ also presents us with an important philosophical issue: How do they influence the way that the city functions as a community?

    Employing examples of new media uses as well as historical case studies, Martijn de Waal shows how new technologies, on one level, contribute to the further individualization and liberalization of urban society. There is an alternative future scenario, however, in which digital media construct a new definition of the urban public sphere. In the process they also breathe new life into the classical republican ideal of the city as an open, democratic ‘community of strangers’.


    Martijn de Waal is assistant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Amsterdam and co-founder of The Mobile City, a research group that investigates the influence of digital media technologies on urban life, and the implications for urban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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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thecityasinterface.com/

    This book is the result of my fascination for both technology and cities. My main interest is not so much in technology itself, but in the way it is shaped by society and how in turn technology has the affordance to reshape our society.
    This time around, digital and mobile media are changing the way urban life takes shape and how we experience our built environment. More and more, we are experiencing the city through the interfaces on our (mobile) screens and through the algorithms designed by various actors, from commercial companies to non-governmental institutions and citizens.
    On the face of it, this is mainly a practical matter: thanks to these technologies we can organize our lives more conveniently. But the rise of ‘urban media’ also presents us with an important philosophical issue: How do they influence the way that the city functions as a community?
    Employing examples of new media uses as well as historical case studies, I wanted to show how new technologies, on one level, contribute to the further individualization and liberalization of urban society. There is an alternative future scenario, however, in which digital media construct a new definition of the urban public sphere. In the process they also breathe new life into the classical republican ideal of the city as an open, democratic ‘community of strangers’.
    If you are interested in these themes, you might also like some other projects I have been working on:

    The Mobile City

    The Mobile City is a research group that I founded with Michiel de Lange in 2007. With The Mobile City we have organized a number of conferences and workshops on the role of new media in urban society and urban design. Some recent projects are:

    Amsterdam Hackable Metropolis (2014)

    Amsterdam Hackable Metropolis is a research project that examines how citizens, design professionals and institutions can take into account the role of new, digital technologies in society and redefine their roles in a democratic ‘city making’ process.

    Made by Us (Shenzhen Biennale of Urbanism/ Architecture, 2013)

    The New Institute, the Netherlands’ new national institute for the creative industry, has invited Dutch research group The Mobile City to help it develop an ongoing dialogue around the concept of smart cities between Chinese and Dutch architects, media makers and designers. We developed a workshop in Beijing and an Exhibition in Shenzhen featuring the work of three Dutch artists / designers: Niki Smit (Monobanda), Sander Veenhofand Mark van der Net

    Social Cities of Tomorrow (2012)

    At this conference and workshop in The Netherlands we addressed the question: How can we use digital media technologies to make our cities more social, rather than just more hi-tech? Keynotes included Dan Hill, Natalie Jeremijenko and Usman Haque. All lectures can still be found at the conference website.

    Book Chapter: From Social Butterfly to Engaged Citizen

    This is my contribution to the book Urban Informatics, Social Media, Ubiquitous Computing, and Mobile Technology to Support Citizen Engagement edited by Marcus FothLaura ForlanoChristine Satchell and Martin Gibbs and published by MIT Press. In the chapter I explore various ‘urban imaginaries’ that have influenced the design of urban media.

    Book Chapter: The Urban Culture of Sentient Cities: From an Internet of Things to a Public Sphere of Things

    I contributed a chapter to the book Sentient City Ubiquitous Computing, Architecture, and the Future of Urban Space edited by Mark Shepard. In this chapter I explore new ways of thinking about the urban public sphere, which became the main theme of The City as Inter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