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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7일 목요일

충칭모델, 신좌파, 중국의 미래 -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추이즈위안/ 돌베개)

충칭모델, 신좌파, 중국의 미래

[책소개]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추이즈위안/ 돌베개)



By   /   2014년 3월 2일, 12:2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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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시장경제’ 이후 20년,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난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는 중국 지도부가 주요 정책 방향을 발표함으로써 이후 중국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회의였다.
1978년 열린 11기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 노선이 채택되었고, 1993년 14기에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공식화한 바 있다. 이번 3중전회 또한 중국의 새로운 성장모델과 개혁안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국유경제를 양립하겠다는 절충안에 그쳤다.
하지만 이 회의는 그간 중국사회의 문제로 줄곧 제기된 쟁점들을 전면화함으로써 중국의 향후뿐만 아니라 그간 중국이 지나온 길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국유기업 개혁, 반부패 정책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민생문제들, 즉 도시.농촌 격차, 농민공(농촌 출신으로 도시에 와서 일하는 노동자. 중국은 엄격한 주민등록제를 시행해, 도시 주민등록이 없는 농민공에게는 복지 혜택을 주지 않는다.)을 비롯한 도시빈민의 교육.주거.의료문제, 주민등록제(후커우)문제, 토지개혁 등이 논의되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확립 이후 20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구호로 내세우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기존의 체제 유지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앞서 언급한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했다.
특히 거대 국유기업을 위시한 특권층은 막대한 부를 독점하고 있지만, 대다수는 성장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은 중요한 구심점이 되었다.
프티부르주아
이른바 ‘충칭모델’
1990년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돌출된 흐름이 이른바 ‘신좌파’이고, 이후 이들의 이념에 바탕해 중국 서남부의 대도시 충칭에서는 국유자산과 시장원리가 독특하게 결합된 경제.사회 정책이 추진되었다. 이른바 ‘충칭모델’이라 불리는 것으로, 시장개혁론에 입각해 국가의 지나친 개입을 반대하는 ‘광둥모델’과 대비되는 발전모델이다.
2012년 중국 최대의 정치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보시라이는 ‘중국 좌파의 영웅’이었고 충칭의 당서기였다. 보시라이 실각 이후, 충칭모델과 신좌파의 목소리가 뒷전으로 밀릴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충칭시 시장 황치판은 18기 3중전회에 제출된 중대한 개혁방안의 초안 작성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도대체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국의 대표적인 신좌파 지식인이자 충칭 제도개혁에 깊이 관여한 바 있는 추이즈위안은 이러한 중국의 상황에 대해 과감한 분석과 대안을 들려준다. 그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를 사상적 입지로 삼으며, 중국적인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충칭의 경험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작업을 시도한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돌베개, 2014)는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창비, 2003) 이후 11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추이즈위안의 저작이다.
서구의 프레임 밖에서 중국 현실에 대한 독자적인 사유를 모색하는 중국 지식인들의 텍스트를 선별한 ‘현대 중국의 사상과 이론’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원톄쥔의 <백년의 급진>에 이은 두 번째 책.
중국의 경험과 진보적 이론들을 종횡하는 실천의 궤적
현재 중국 칭화대학 공공관리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추이즈위안은 중국 신좌파 지식인 그룹의 대표적 이론가이다. 중국 국방과학기술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다양한 사상적 자원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구축했다.
추이즈위안은 1990년대에 중국적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제도적 혁신에 관한 글을 발표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사회가 서구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고수했으며, 정치적 구호로 치부된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는 중국의 개혁이 신자유주의에 맞서려면 사회주의적 경험의 합리적 요소를 살리되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나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서구의 사회민주당은 급진적인 영감을 일찌감치 잃어버렸다. 사회민주당의 강령은 기존 시장경제 체제의 형식에 도전하고 이를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회의 구조적 격차와 계급계층 제도로 인한 후유증을 완화시키는 데 치중한다.”(24쪽)
그래서 그는 프루동, 존 스튜어트 밀로부터 헨리 조지, 실비오 게젤, 제임스 미드, 로베르토 망가베이라 웅거 등의 진보적 이론들을 흡수하여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자유사회주의)의 흐름을 복권해내며, 그러한 시야 속에서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분석한다.
여기에는 물론 중국의 현실적 경험, 페이샤오퉁과 장펑춘 같은 중국 현대 사상가들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 홍콩 등 다른 국가의 제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뒷받침되어 있다.
추이즈위안은 중국의 농촌 토지소유제도, 향진기업, 국유기업제도 등에서 이 새로운 사회주의의 싹을 발견해냈으며, 충칭의 실험에서 자신이 주장한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가 하나의 체제로 실현될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당시 충칭시 시장이었던 황치판의 제안으로 2010년 5월부터 충칭시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에서 일하며 정책개혁에 참여했다.
이처럼 추이즈위안의 궤적은 비서구사회인 중국에서 가능한 보편적 이론 생산의 한 가지 모델을 제시한다.
해제에서 류준필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추이즈위안은 이른바 서방의 기준으로 중국의 현실을 판단하는 시각을 경계하는 한편,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일반적 존재 양상과도 구분되는 중국적 현실과 경험의 독자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서구의 전통에 내재된 요소들을 당대 중국적 현실을 해명하는 데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201쪽)
추이즈위안은 중국의 현실에 바탕을 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서 서구 사상의 전통적인 요소들과 동시대 사상들을 종횡하며 진보적인 이론을 재구성한다. 또한 충칭실험에 나타난 새로운 정치·사회적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재해석하고 직접 정책생산 과정에 개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의 기록이 담긴 추이즈위안의 글들은 서구 이론과 중국의 현실, 보편과 특수, 이론과 제도가 만나는 지점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촉발한다. 이론이 한 시대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자 응답임을 환기시키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한국의 학자와 정책 관계자들에게도 풍부한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자유사회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신국제주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에 수록된 글들은 크게 세 가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자유사회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신국제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헨리 조지, 제임스 미드, 안토니오 그람시: 충칭개혁의 세 가지 이론적 관점」「‘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경제학적 함의에 대한 재인식」「‘충칭의 경험’과 제도혁신」 등 네 편의 글은 프루동과 존 스튜어트 밀에서 제임스 미드에 이르기까지의 ‘자유사회주의’ 이론을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의 개혁 경험, 특히 충칭의 실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한편,「‘혼합헌법’ 그리고 중국정치의 세 층위 분석」은 ‘공화주의’ 시각에서 중국의 정치개혁을 탐구하며, 「‘아시아적 가치’ 대 ‘서구적 가치’라는 사유방식을 넘어서: 인권문제를 보는 시각」「제3세계에서 서구중심주의와 문화상대주의의 초월」「시바이포 포스트모던: UN인권선언과 보편적 역사의 여명」은 민족주의와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적 발전을 기원하는 ‘신국제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전통과 그 의의를 과감하게 재구성한「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에서 추이즈위안은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를 ‘자유사회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으며, “중국 및 세계에서 마르크스주의,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경쟁할 것”이라는 야심을 내비친다.
그가 이야기하는 프티부르주아(소자산 계급)는 ‘중산 계급(중산 계층)’이라는 개념과 다르며, 당연히 농민을 포함한다. 그에 따르면,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경제적 목표는 개혁과 기존 금융시장 체제의 전환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는 것”이며, “정치적 목표는 ‘경제적 민주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계급 대립 없이 모든 시민이 공동의 부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를 강조한 덩샤오핑의 ‘소강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추이즈위안은 현대 중국의 토지소유제, 기업제도 등이 자본주의와는 다른 대안적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설명하며, 여러 이론가들의 논의를 오가며 금융과 노동과정, 소유권 개혁 등 제도혁신과 관련된 아이디어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추이즈위안의 구상이 현실에 가깝게 구현된 곳이 바로 충칭이었다. 「헨리 조지, 제임스 미드, 안토니오 그람시」「‘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경제학적 함의에 대한 재인식」「‘충칭의 경험’과 제도혁신」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관한 의미 있는 실천으로서 충칭 제도개혁을 맥락화해낸다.
충칭실험의 핵심은, 정부가 토지와 기업을 공유자산으로 소유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지가 상승 수익과 국유기업의 시장 수익을 사회적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달리, 높은 세율 없이도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해 민간부문의 발전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민생을 지원해왔다.
또한 지표거래제도의 시행과 주민등록제(후커우) 개혁을 통해 도농 통합발전을 촉진하고, 차별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농민공’들이 도시주민과 동등하게 공공임대주택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충칭시 정부는 삼진삼동, 빈농 자매결연, 민생 대탐방 등의 제도를 통해 간부들이 인민에게 봉사하도록 독려했다.
추이즈위안은 이러한 충칭의 제도개혁에 대해 헨리 조지, 제임스 미드, 안토니오 그람시 등의 이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충칭개혁 이론가의 언어를 통해 중국을 뜨겁게 달군 충칭의 경험을 다각도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재 중국이 겪고 있는 첨예한 문제들, 그리고 그것을 돌파하는 사유와 실천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추이즈위안은 공산당 중심의 관료주의와 국가주의의 위험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탐색하고, 서구 중심의 보편주의와 중국 민족주의를 넘어선 신국제주의 이념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한국의 독자들과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문제를 해결해고자 하는 충칭의 혁신적인 실험과 추이즈위안의 이론화 작업은 중국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소중한 교훈을 전달한다. 이 책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국가의 역할, 자본주의 너머의 정치, 좌우라는 경직된 이념을 넘어서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고민하는 한국의 진보적 독자들에게 신선한 지적 자극을 줄 것이다.

쉬지린의 국가주의, 역사주의 비판

“중국 경제발전 이후 ‘우월적 역사주의’ 팽배”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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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화둥사범대학 쉬지린 역사학과 교수

“중국 자본주의의 성공은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지식인 사회에서도 중국적 특수성과 우월성을 내세우는 역사주의가 팽배해졌어요. 그러나 이는 자칫 국가주의나 패권주의와 결합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대표적 ‘공공지식인’으로 꼽히는 쉬지린 교수는 “중국은 고대부터 민중의 정치 비판을 금지했으나 지식인은 예외의 권리를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 김창길 기자
쉬지린(許紀霖·53) 중국 상하이 화둥사범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최근 중국 지식인 사회의 퇴행적 움직임을 이렇게 경고한다. “서구식 자본주의 근대화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시장사회주의를 도입해 성공하면서 자칫 보편성과 동떨어진 중국적 가치와 문화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근현대사상사 전공인 그는 2004년 이후 중국잡지 ‘남방인물주간’이 선정하는 100대 공공지식인에 계속 선정되는 학자다. 공공지식인이란 비판적 지식을 갖추고 공공영역에 참여하는 학자·언론인·예술가·과학자 등을 일컫는 말이다.

쉬 교수는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가 ‘중국의 지식·지식인의 형성과 패러다임의변화’란 주제로 15·16일 개최하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보편문명인가, 아니면 중국적 가치인가:최근 10년간 중국의 역사주의 사조’란 제목의 발표를 맡았다. 그가 비판하는 중국적 맥락의 역사주의란 “일체화된 민족정신”을 말한다.

“중국의 경제 발전에 대한 자부심이 중국 내에서 역사주의 사조를 부추기게 됩니다. 역사주의란 객관적인 법칙, 초월적 의지 혹은 보편적 인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역사를 개성의 존재방식으로 바라보는 입장인데요. 이것이 서구 문명의 보편성을 거부하는 근거로 작용하면서 중국 문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결과를 빚게 됩니다.”

그는 서구의 ‘보편문명’, 중국의 ‘특수문명’ 모두를 비판한다. 서구의 보편문명은 특수문명의 하나일 뿐이지만 그것의 보편성까지 사라질 수는 없다. 또 현대 중국문명 안에는 이미 서구문명이 들어와 있는 만큼 서구에 대항하는 중국성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주의가 아니라 다원주의, 즉 서로 다른 방식의 근대성이 각자의 역사와 공간에서 발전한다는 것이 그의 학문적 입장이다.

최근 중국은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에도 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만큼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미국·유럽 등 국제사회로부터 환율절상 압력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쉬 교수는 “덩샤오핑의 말대로 천천히 탐색하면서 발전시키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기적 성장보다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또 중국 자본주의 도입과정에서 물질적 번영만을 추구하는 ‘탈가치, 탈윤리의 부강 모더니티’가 횡행하는 데 대해 비판했다.

“경제는 몰라도 문화적 수준은 아직 대국굴기(大國굴起)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대적 가치와 제도를 포함한 문화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아직 부패 등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한 예로 상하이에는 12개의 전철노선이 있고 총 길이가 런던과 비슷해요. 그러나 줄을 서지 않는 모습을 보면 경제와 문화 수준 사이의 격차가 느껴집니다.”

쉬 교수는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중국정부의 반발에 대해 “개인적 입장은 있으나 외국 매체에서 발표할 수는 없다”고 조심스러워했다. 대신 그는 “원자바오 총리가 미국 방문에서 언급했듯이 중국 내에서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특히 지식인들은 비판의 권리를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중국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반 국민이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기시됐으나 지식인은 예외라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가 정치적 민주화를 먼저 이룬 대신 경제발전에 실패했다면, 중국은 경제발전을 앞세우는 과정에서 민주화가 낙후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화를 위해 먼저 법치가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법가사상으로부터 내려온 법은 일종의 통치수단으로 법 위에 항상 권력자가 있었으나 이제는 법이 표준이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쉬 교수는 중국이 북한 김정은의 3대 세습을 용인하는 입장을 보이는 데 대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에 바라는 것은 중국식 개혁개방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체제가 안정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앞으로 김정은의 통치능력이 어떻게 발휘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0152138295&code=9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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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패러다임’, 富强을 목표로 한 국가주의 색채로 충만”
쉬지린 상하이 화둥사범대 교수가 말하는 ‘최근 10년간 중국의 역사주의 사조’
2010년 11월 01일 (월) 17:46:47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최근 국내 학계에 중국학자들의 움직임이 빈번하게 소개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 지식인의 동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내진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소장 김수영)와 상해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가 국민대에서 ‘중국의 지식·지식인의 형성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제로 개최한 제1회 국제학술회의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보편 문명인가 아니면 중국적 가치인가? 최근 10년간 중국의 역사주의 사조」를 주제발표한 쉬지린 상하이 화둥사범대 교수(53세, 역사학·사진 오른쪽 끝)에 시선이 쏠렸다. 중국 근현대사상사를 전공한 대표적 사학자이며 중국지식인에 대한 연구의 권위자인 그는 중국 지식인들의 담론 변화의 지점을 진단하는 데 탁월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다음은 쉬지린 교수의 발제문 가운데 주요 부분을 발췌 요약한 글이다. 
  
  

지난 2000년대는 중국이 우뚝 일어난 10년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흥기는 이미 세계가 공인하는 사실이 됐다. 30년간의 개혁개방을 지속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면서 글로벌 주류 문명에 녹아드느냐, 아니면 독특한 중국적 가치를 찾아 새로운 모더니티를 제공하느냐의 ‘보편적 가치론’과 ‘중국 특수론’의 감추어진 논쟁이 공공영역에서 직접적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중국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거의 그 뒷면의 살기등등한 기세를 엿볼 수 있다. 현재 사상계의 서사 배후에서 유행하는 각종 ‘중국적 가치’, ‘중국 패러다임’, ‘중국 주체성’ 등은 한 가지 이론 가설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즉 반계몽적, 보편 이성에 대항하는 역사주의다. 새로운 세기 초의 역사주의 사조는 성대하게, 장관을 이루며 한때 중국 사상계의 저명한 학설이 됐었다.

2008년 이전에는 ‘세계가 중국을 발견’했다면 2008년 이후에는 이미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우뚝 솟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갑작스러운 거대한 변화 역시 역사주의적 경향을 띤 지식인들에게 미묘한 심리적 변화를 가져왔다. 얼마 전 그들은 조심스레 중국 모더니티의 특수한 경험에 대해 논증한 바 있는데 이제는 오만하게 조심스럽던 ‘중국 경험’을 한 단계 상승해 체계를 이룬 ‘중국 패러다임’으로 말하고 있다. 이 같은 패러다임은 중국의 특수한 國情에 적합할 뿐 아니라 서양과 겨루기에 충분한 다른 종류의 모더니티로 승화해, 비서양 국가가 참고하고 모방할 수 있는 최신 사례로 탈바꿈했다. 과거에는 ‘중국 특수론’으로 보편적 가치의 공격을 막아냈다면 지금은 특수가 보편으로 바뀌어 ‘중국 패러다임’이 돛을 달고 출항해 국제무대로 나아가 전세계 문명의 담론 패권을 쟁탈한다.

이런 형형색색의 ‘중국 패러다임’에는 모두 富强을 최고로 치는 국가주의 색채로 충만하다. 최근 중국 사상계에는 이목을 끄는 현상이 등장했다. 민족주의가 온화한 문화 보수주의에서 극단적인 정치 보수주의로 탈바꿈하고 反모더니티의 슈트라우스주의와 국가이성제일의 슈미트주의가 손을 잡고 급진 좌익 그룹이 우익으로 전환돼 현재 정치 질서를 인정하는 국가주의로 전향한 것이다. 국가주의의 등장은 역사주의의 사조이자 긴밀한 관계가 있다. 철학 영역의 역사주의는 정치적인 국가주의로 발전되고, 개중에는 종잡을 수 없는 논리의 통로가 존재한다.

중국의 국가주의가 서양에 저항하고, 중국의 특색을 띤 길을 추구할 때 사실은 가장 서양적인 방식으로 중국적이라 여기는 이상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양문명에서 한층 더 진귀한 보편적 가치를 배제하고, 서양문명의 야만적인 부국강병을 계승했다. 그들이 서양의 무게 중심을 서양 문명의 계몽가치로 구체화하는 것에 반대했을 때 오히려 가장 무서운 부강 모더니티를 은밀히 놓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 표면적으로는 서양과 맞서지만 실제로는 이리저리 부딪히며 하나가 되고 서양의 정신적 포로, 즉 문명 가치가 가장 결핍된 부분의 정신적 포로가 됐다.
부강 모더니티 극복과 보편성 담론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역사주의자가 국가주의로 떨어질 때 다른 부분의 인문 감성을 가진 역사주의자는 부강 모더니티를 뛰어넘어 중국 문명의 재건을 시도해 서양과 보편성의 담론 지도권을 다툰다. 최초로 이 같은 자각의식을 가진 이는 간양(甘陽)이다. 2003년 말, 간양은 중국이 민족국가에서 문명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근대 터키를 본보기로 삼아 만약 한 나라가 서양을 배우고 자기 민족의 문화전통을 스스로 훼멸시킨다면 이는 ‘자기거세식의 현대화’로서 결국 얻어지는 것은 ‘자기 분열적 국가’에 불과할 것이라 했다.

1990년대의 문화 보수주의에서 중국 문명을 부흥시킨 것은 민족문화의 특수성을 지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2000년대에 이르러 중국이 우뚝 솟은 배경에서 중국 문명의 부흥자들이 강력한 서양과 보편성을 다투는 ‘문명의 욕망’을 싹틔웠다. 장쉬둥(張旭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글로벌 시야에서의 중국적 가치’ 문제를 제시하는 것은 ‘중국적 가치를 ‘보편 문명’의 높이와 틀에 두고 사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중국적 가치와 보편적 가치 사이에는 어떤 긴장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적 가치가 서양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중국적 가치’는 필연적으로 ‘세계 문명 주류’의 구성 부분이다. ‘중국적 가치’의 문제에는 반드시 이론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중국적 실천이 선험적으로 모든 기존의 참조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적 가치의 실현은 보편적 의미를 가진 역사성의 실험이자 ‘구세계를 타파하고 신세계를 세우자’는 혁명적 집단행동이다.

중·서 문명의 문제를 대할 때 중국의 역사주의는 이중적 잣대를 적용한다. 한편으로는 서양이 보편성을 가장하는 특수 문명일 뿐이며 동시에 자신의 문명이 천성적으로 보편적 자격을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 이 실용주의적인 이중적 잣대가 잠재의식 중에서 ‘적과 나를 구별’하는 ‘문명충돌론’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의 역사주의 담론 가운데 ‘보편적 가치’와 ‘중국적 가치’를 인위적으로 대립시킨 가설이 있다. 보편적 가치가 서양의 가치이며, 중국의 ‘좋은 점’은 반드시 서양의 좋은 점과 대립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서양 모더니티가 가진 복잡한 이중성은 보편적 문명을 내포한 계몽적 가치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야만적 확장의 국가이성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자유민주의 보편적 가치와 야만적 확장의 국가이성 중 어떤 서양 문명을 흡수하느냐에 있다.

놀라운 사실은 중국의 역사주의는 고야스 노부쿠니, 사카이 나오키 등의 일본 좌파학자들과는 다르게 서양의 포화를 비판하는데, 부강을 목표로 하는 마키아벨리즘을 겨냥하지 않고 오히려 부러워했을 뿐이다. 이에 서양 현대성에 대한 토벌이 역방향의 선택으로 나아갔을 뿐이다.
문화 다원주의와 중국의 선택

이사야 벌린은 유럽 초기 역사주의의 대표 인물인 비코와 헤르더를 이야기하며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듯 문화 상대주의자가 아니라 진정한 문화 다원주의자였다고 지적했다. 문화 다원주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지만, 여러 역사 문화 맥락 가운데 보편적 가치에는 서로 다른 문화 형식과 구체적인 표현이 존재한다. 민족문화의 기초를 떠나면 보편적 가치는 근원이 사라진다. 문화 다원주의는 계몽적 보편적 가치와 공존 가능하다. 우리는 자신의 문화, 국가와 계급의 특수한 가치관을 초월하는 능력을 지녀야 하며, 문화 상대주의자가 우리를 제한하려는 봉인된 상자를 부수고 ‘타자’의 문화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하기만 한다면 ‘타자’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생활 목표를 이해할 수 있어 이로써 인류문화의 공통점과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다.

‘보편 문명인가 아니면 중국적 가치인가’라는 문제는 거짓 문제일 수도 있다. 정확한 답은 보편 문명을 품고 중국적 가치를 재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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