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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5일 수요일

루치아노 플로리디: 정보-데이터 이해하기


데이터 이해하기
Understanding data

데이터의 가장 근본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좋은 방법은 데이터를 지우고, 훼손하거나 상실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언어로 쓰여진 어떤 책의 페이지를 상상하자. 데이터는 그림 문자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규칙적인 유형들은 어떤 구조적 구문론을 따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에게 모든 데이터가 있지만, 우리는 그것들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는 아직 아무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 이제 그림 문자들 가운데 절반을 지우자. 우리가 그 데이터를 반으로 나누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을 계속 진행하여 단 하나의 그림 문자가 남게 되면, 데이터는 어떤 종류의 표상들을 필요로 하거나, 또는 그것들과 동일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마지막 그림 문자도 지우자. 하얀 페이지가 남게 되지만, 아직은 전적으로 데이터가 없지는 않다. 하얀 페이지와 그 위에 무언가가 쓰여져 있거나 쓰여질 수 있는 페이지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 한, 하얀 페이지의 존재가 여전히 하나의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묵시적 동의'라는 흔한 현상과 비교하자. 이진 체계의 0의 열과 꼭 마찬가지로 침묵, 또는 지각할 수 있는 데이터의 결여는 어떤 소음의 존재만큼이나 하나의 데이터일 수 있다. 앞의 사례에서 존이 자기 자동차의 엔진에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 때 갖게 되는 우려를 떠올리자. 그런 소음의 결여는 정보를 제공한다. 사실은 모든 데이터의 정말로 완전한 소거는 모든 가능한 차이들을 제거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데이터는 궁극적으로 균일성의 결여(lack of uniformity)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정보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구별짓기이다'라고 적었을 때 도널드 맥크리먼 맥케이(Donald MacCrimmon MacKay, 1922-1987)는 이 중요한 점을 강조했다. 그의 뒤를 이어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 1904-1980)은 덜 정확하지만 더 유명한 슬로건을 제시했다. '사실상 정보―정보의 기본 단위―가 의미하는 것은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이다'. 더 형식적으로, 차이적 해석(diaphoric interpretation)[디아포로(diaphora)는 '차이'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낱말이다]에 따르면, 하나의 데이터[데이텀(datatum)]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하나의 데이터 = y와 구별되는 x. 여기서 x와 y는 두 개의 미해석된 변수들이고 '구별되는 상태'의 관계와 정의역은 후속적인 해석에 열려 있다.

데이터에 대한 이 정의는 세 가지 주요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

첫째, 현실 세계에서 데이터는 균일성의 결여일 수 있다. 그런 '야생의 데이터'를 가리키는 특정한 명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데이터는 그리스어로 '데이터'를 나타내는 데도메나(dedomena)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데이터'라는 낱말은 제목이 <<데도메나>>라는 유클리드 저작의 라틴어 번역본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자). 데도메나는 뒤에 다루게 될 환경적 정보(environmental information)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데도메나는 순수한 데이터, 즉 해석되거나 인지 절차를 겪기 전의 데이터이다. 데도메나는 직접 체험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존재는 체험으로부터 경험적으로 추론되고 체험에 의해 요구되는데, 우리의 정보가 도대체 가능하기 위해서는 데도메나가 세계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도메나, 즉 세계 속 균일성의 결여라면 무엇이든 데이터(우리 같은 정보적 유기체들에 그렇게 보이는 것)의 원천인데, 예를 들면, 어두운 배경에서 빛나는 적색 빛이 있다. 5장에서 나는 이 문제를 다시 다룰 것인데, 정보는 물질적 본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테제를 거부하면서 데이터가 없다면 아무 정보도 있을 수 없다는 테제를 수용할 수 있는 연구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둘째, 데이터는 어떤 체계의 최소 두 개의 물리적 상태 또는 신호 사이에 존재하는 균일성의 결여일 수 있다. 예를 들면, 배터리의 더 높은 충전 상태 또는 더 낮은 충전 상태, 전화 통화에서 가변적인 전기 신호, 또는 모스 알파벳의 점과 선이 있다.

마지막으로, 데이터는 두 기호 사이에 존재하는 균일성의 결여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라틴어 알파벳에서 문자 B와 P가 있다.

해석에 따라, (1)의 데도메나는 (2)의 신호와 동일하거나, 아니면 신호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고, (2)의 신호는 (3)에서 기호의 코드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구문론적으로 잘 구성된 데이터의 발생에 대한 정보의 의존성, 그리고 물리적으로 다양하게 실행될 수 있는 차이 발생에 대한 데이터의 의존성이 정보가 자체의 기체(基體)로부터 매우 쉽게 분리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데이터 및 정보를 코드화하는 현실적 형태매체 그리고 언어는 흔히 무관하고 무시될 수 있다. 특히, 영어로 코드화되든 어떤 다른 언어로 코드화되든, 기호로 표현되든 그림으로 표현되든, 아날로그이든 디지털이든 간에, 동일한 데이터/정보가 종위 위에 인쇄될 수 있거나 화면에 표시될 수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구별짓기가 가장 중요하고 얼마간 분명히 할 가치가 있다.

――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 <<정보: 매우 짧은 입문(Informa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2010), pp. 22-25.

루치아노 플로리디: 정보-데이터에 기반을 둔 정보에 관한 정의



데이터에 기반을 둔 정보에 관한 정의
The data-based definition of information

지난 수십 년 동안 데이터 + 의미(data + meaning)의 견지에서 정보에 관한 일반적 정의(GDI, General Definition of Information)를 채택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GDI는 조작적 표준이 되었는데, 특히 데이터와 정보를 물화된 존재자, 즉 조작될 수 있는 물질(예를 들면,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과 '정보 관리' 같은 현재 일반적인 표현들을 생각하자)로 취급하는 분야들에서 그랬다. GDI를 형식화하는 직접적인 방법은 세 갈래로 이루어진 정의로 주어진다.

GDI) 아래의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에만 σ는 의미적 내용으로 이해되는 정보의 일례이다:
  GDI.1) σ는 n개의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다(n ≥ 1);
  GDI.2) 데이터는 잘 구성되어 있다;
  GDI.3) 잘 구성된 데이터는 의미가 있다.

(GDI.1)에 따르면, 정보는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다. (GDI.2)에서 '잘 구성된(well formed)'이라는 낱말은, 선택된 체계, 코드, 또는 사용되는 언어를 지배하는 규칙들(구문론)에 따라 데이터가 올바르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구문론은 그저 언어학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의 형식, 구성, 조성 또는 구조화를 결정하는 것으로 폭넓게 이해되어야 한다. 공학자, 영화 감독, 화가, 체스 경기자 그리고 정원사들은 이런 넓은 의미에서 구문론에 관해 말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조작 지침서는 다른 차의 배터리에 연결하여 시동을 거는 방법에 관한 이차원 그림을 보여준다. 이 그림의 구문론(수렴하는 평행선들로 공간을 표상하는 선형적 원근법을 포함하는)은 사용자에게 잠재적으로 유의미한 삽화를 구성한다. 동일한 예에 여전히 의존하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실제 배터리가 올바른 방식으로 엔진에 연결될 필요가 있는데, 체계의 올바른 물리적 구조의 견지에서 이것은 여전히 구문론이다. 그리고 물론, 존이 그의 이웃과 나누는 대화는 영어의 문법 규칙들을 따르는데, 이것은 일상적인 언어적 의미에서 구문론이다.

(GDI.3)에 대해서, 이것이 최종적으로 의미론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의미가 있는'이라는 낱말은 데이터가 선택된 체계, 코드, 또는 문제의 언어의 의미들(의미론)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한 번, 의미론적 정보는 반드시 언어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조작 지침서의 경우에, 삽화들은 독자에게 시각적으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

데이터가 어떻게 자연 언어 같은 기호 체계(semiotic system)에서 할당된 의미와 기능을 갖게 될 수 있는지라는 문제는 의미론에서 가장 어려운 의문들 가운데 하나인데, 그것은 기호 접지 문제(symbol grounding problem)로 알려져 있다. 운이 좋게도, 여기서 그 문제는 무시될 수 있다. 분명히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점은 정보를 구성하는 데이터가 정보 수신자(informee)에 무관하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를 고려하자. 로제타 석에는 단일한 구문에 대한 세 가지 언어, 즉 이집트 상형 문자, 이집트 민중 문자 그리고 고전 그리스 언어의 번역문이 새겨져 있다. 그것이 발견되기 전에, 그 문자의 의미는 그 어떤 해석자도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집트 상형 문자는 이미 정보로 간주되었다. 그리스어와 이집트어 사이의 접면의 발견은 그 상형 문자의 의미론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이해 가능성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그 어떤 정보 수신자에도 무관하게 정보 전달자(information-carrier)들에 묻어 들어가 있는 유의미한 데이터에 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이 합당하다. 이것은 데이터가 지능을 갖춘 생산자/정보 제공자(producer/informer)에 무관하게 나름의 의미론도 갖추고 있을 수 있다는 더 강한 테제와 매우 다르다. 이것은 환경적 정보(environmental information)로도 알려져 있지만, 그것을 논의하기 전에 데이터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 <<정보: 매우 짧은 입문(Informa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2010), pp. 20-22.

루치아노 플로리디: 정보-정보권에서의 삶


정보권에서의 삶
Life in the infosphere

몇 가지 중요한 예외(예를 들면, 고대 문명의 항아리와 금속 연장들, 판화들 그리고 구텐베르크 이후의 책들)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객체들의 세계에서 객체 유형들의 세계―모든 것을 서로 동일하게 완벽히 재생산할 수 있고, 그래서 분간할 수 없으며, 그 결과 상호작용들의 허용 범위가 전혀 축소되지 않은 채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처분할 수 있는―로의 이행을 정말로 특징지었던 것은 산업 혁명이었다. 우리 선조들이 말 한 마리를 구매할 때 그들은 '전형적인' 말이 아니라  말 또는  말을 구매했다. 오늘날에는 두 대의 자동차가 사실상 동일하고, 그래서 어떤 모형의 개별적 '화신'이 아니라 그 모형을 구매하도록 부추긴다는 점이 명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상 우리는, 건물 전체에 대해서도, 수리를 교체와 같은 뜻으로 간주하는 객체들의 상업화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보상 형식으로서 정보적 브랜드화와 재전유라는 우선적 처리 방식을 낳았다. 수천 대의 다른 자동차들과 완벽하게 동일한 자기 자동차의 창에 스티커를 붙이는 사람은 개체성을 지원하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정보 혁명은 이 과정을 더욱 더 악화시켰다. 윈도우 쇼핑이 윈도우즈 쇼핑이 되어서 더 이상 거리를 걷는 것이 아니라 웹을 검색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면, 개인적 정체성에 대한 감각 역시 부식되기 시작한다. 독특하고 교체할 수 없는 존재자로서의 개체 대신에 우리는 온라인 상에서 수십 억 명의 다른 유사한 정보적 유기체들에 노출된, 다른 익명의 존재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대량 생산된 익명의 존재자들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블로그와 페이스북 항목들, 홈페이지, 유튜브 비디오 그리고 플릭크를 사용함으로써 정보권에서 자신을 브랜드화하고 재전유하게 된다.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가 모든 종류의 유행 광들에게 낙원이어야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당한데, 그것은 디자이너와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 새롭고 유연한 플랫폼을 제공할 뿐 아니라, 사용자(아바타)들이 자기 정체성과 개인적 취향에 대한 가시적인 징표들을 획득해야 한다는 압력을 격심하게 느끼는 바로 그런 맥락이다. 마찬가지로, 사생활 권리에 대해 대단히 신경 쓰는 사회와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들의 성공 사이에는 모순되는 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에 관한 정보가 정보적으로 덜 익명적인 것이 되도록 그 정보를 사용하고 노출시킨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개별자로 식별할 수 있도록 자신을 구성하기 위해 공적으로 투자될 수 있는 귀중한 자본을 축적하는 거의 유일한 방식인 것처럼 우리는 높은 수준의 정보적 사밀성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내가 방금 묘사한 것들과 같은 과정들은 정보 혁명에 의해 초래된 훨씬 더 심원한 형이상학적인 이동의 일부이다. 대략 지난 십 년 동안 우리는 온라인 상에서의 우리 삶을 디지털 환경에 대한 인간 행위자들의 진화적 적응과 인간들에 의한 디지털 공간의 탈근대적인 신식민지화의 한 형태 사이의 혼합물로 개념화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런데 진실은 정보통신기술이 새로운 실재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만큼이나 우리 세계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탄소에 기반을 둔 아날로그적인 오프라인)과 저곳(실리콘에 기반을 둔 디지털적인 온라인)의 경계는 빠르게 흐릿해지고 있지만, 이것은 전자만큼이나 후자에게도 유리하다. 디지털적인 것이 아날로그적인 것으로 넘쳐 흘러 합병되고 있다. 최근의 이런 현상은 "유비쿼터스 컴퓨팅", "엠비언트 인텔리전스", "사물 인터넷", 또는 "웹 증강 사물"처럼 다양하게 알려져 있다.

인공물과 전체 (사회적) 환경과 생활 활동의 정보화의 증가는 정보화 이전 시대의 삶의 모습을 이해하기가 곧 어려워질 것이고(예를 들면, 2000년에 태어난 사람에게 세계는 항상 무선적이었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구분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시사한다. GPS의 지침에 따르면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상적인 경험은 누군가가 온라인 상에 있는지 여부를 묻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되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그것을 극적으로 서술하면, 정보권이 여타의 공간을 점진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미래에는, 더욱 더 많은 객체들이 서로 배우고 충고하며 소통할 수 있는 IT 존재자(ITentity)들일 것이다. 좋은 일례(그러나 그것은 한 가지 예일 뿐이다)는 바코드처럼 어떤 객체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원격으로 검색하며 그것에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전파 식별(RFID) 태그에 의해 제공된다. 태그는 종이보다 훨씬 더 얇고 0.4 제곱밀리미터의 면적 범위를 측정할 수 있다. 매우 작은 이런 마이크로칩을 인간과 동물을 비롯한 모든 것에 주입하면 IT 존재자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것은 과학소설이 아니다. 시장조사 기업 인스탯(InStat)의 보고서에 따르면, RFID의 전 세계 생산량은 2005년과 2010년 사이에 25배 이상 증가하혀 330억 개에 이르렀을 것이다. 330억 개의 이런 IT 존재자들을 수억 개의 PC, DVD, 아이포드 그리고 이용할 수 있는 다른 정보통신 기기들과 네트워크로 결합시킨다고 상상하면, 정보권이 더 이상 '저곳'이 아니라 '이곳'이며 거주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이키 센서와 아이포드는 이미 서로 이야기한다.

현재 노인 세대들은 여전히 정보의 공간을 접속하고 단속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견해(형이상학)는 여전히 근대적인 것, 즉 뉴턴주의적인 것인데, 세계는 상호작용하지 않고, 반응하지 않으며, 소통할 수 없거나 학습할 수 없거나 기억할 수 없는 '죽은' 자동차, 건물, 가구, 옷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선진적인 정보 상회에서는 우리가 여전히 오프라인 상에서 세계로 경험하는 것은 실시간으로 a4a(anywhere for anytime)로 작동하는, 도처에 편재된 무선 a2a(anything to anything) 정보 과정들로 이루어진 전적으로 상호작용적이고 더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세계는 우선 그것을 '인공적으로 살아있는' 것으로 이해하도록 부드럽게 요청할 것이다. 세계의 이런 생기화는 역설적으로 우리의 견해를 자연의 모든 측면에 목적론적 힘이 거주한다고 해석한 기술 이전 문화들의 견해와 더 가깝게 만들 것이다.

이것은 정보적 견지에서 형이상학을 재개념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실제 현실'이 그곳에 거주하는 기계들의 금속만큼이나 여전히 딱딱한 <매트릭스(Matrix)> 같은 시나리오에 의해 표현되는 디스토피아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의 사이버네틱스 이후의 허구적 거대도시인 뉴포트 시티 같은 환경에 의해 표상되는 진화적인 혼성적 의미에서 세계를 정보권의 일부로 간주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정보권은 진정으로 '물질적인' 배후 세계에 의해 지지되는 가상적 환경이 아니라, 오히려 정보권의 일부로서 점점 더 정보적으로 해석되고 이해될 세계 자체가 될 것이다. 이런 변화가 끝날 무렵에 정보권은 정보의 공간을 가리키는 한 방식에서 실재와 동일시되는 것으로 변환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점점 더 쉽게 수용할 수 있게 될 그런 종류의 정보적 형이상학이다.

일상적 환경의 그런 변형의 결과로 우리는 점점 더 동시화되고(시간), 탈국소화되며(공간), 서로 관련될(상호작용) 정보권에서 살게될 것이다. 이전의 혁명들(특히 농업 혁명과 산업 혁명)은 흔히 그다지 예견하지 않은 채 우리의 사회 구조와 건축 환경의 거시적 변형을 초래했다. 정보 혁명도 못지 않게 극적이다. 우리가 미래 세대들이 거주할 새로운 환경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서 우리는 예견할 수 있는 문제들을 피하고 싶다면 정보권의 생태학에 관해 연구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알게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정보권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보존될 필요가 있는 공통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간의 시간과 전적으로 새로운 교육 및 감성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것은 확실한 듯 보이는데, 디지털 격차는 일종의 단절이 되어서 정보권의 주민이 될 수 있는 사람들과 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 내부자들과 외부자들 사이에, 정보가 풍부한 사람들과 정보가 빈약한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형태들의 차별을 생성할 것이다. 디지털 격차는 전 세계 사회의 지도를 다시 그릴 것인데, 세대적, 지리적, 사회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격차를 생성하거나 넓힐 것이다. 그런데 그 간극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거리로 환원될 수 없을 것인데, 그것은 사회들을 가로질러 횡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의 디지털 슬럼가들에 대한 기반을 준비하고 있다.

――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 <<정보: 매우 짧은 입문(Informa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2010), pp. 14-18.

루치아노 플로리디: 정보-네 번째 혁명


네 번째 혁명
The fourth revolution

대단히 간략하게 말하자면, 과학은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키는 두 가지 근본적인 방식이 있다. 한 가지는 외향적(extrovert) 방식 또는 세계와 관련된 방식으로, 그리고 나머지 다른 한 가지는 내향적(introvert) 방식 또는 우리 자신과 관련된 방식으로 부를 수 있다. 세 번의 과학혁명은 외향적으로도 내향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키면서 그것들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관념도 수정하였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 이후에 태양중심적 우주론은 지구와 인류의 지위를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렸다. 찰스 다윈(1809-1882)은 모든 생물종들이 공통 조상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화했다는 것을 증명했는데, 그 결과 인류를 생물학적 왕국의 중심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를 좇아서 현재 우리는 마음 역시 무의식적이고 억압에 대한 방어 메커니즘의 지배를 받는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인류는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코페르니쿠스 혁명), 동물 왕국의 나머지 부분에서 부자연스럽게 분리되어 있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며(다윈 혁명), 그리고 예를 들면, 르네 데카르트(1596-1650)가 가정했듯이, 우리는 자신에게 전적으로 투명한 고립된 마음들이 결코 아니다(프로이트 혁명).

이런 고전적 그림의 가치에 대해 쉽게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프로이트가 이런 세 혁명을 인간 본성의 재평가라는 단일한 과정의 일부로 해석한 최초의 인물이었고, 그의 시각은 노골적으로 자화자찬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프로이트를 인지과학이나 신경과학으로 대체하면, 최근에 인간의 자기 이해에 매우 중요하고 심대한 일이 일어났다는 우리의 직관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틀을 여전히 찾아낼 수 있다. 1950년대 이래로 컴퓨터 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은 내향적 및 외향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인류와 세계의 상호작용뿐 아니라 인류의 자기 이해도 변화시켰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는 고립된 존재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연결된 정보적 유기체 또는 인포그(inforg)로서 궁극적으로 정보로 이루어진 전지구적 환경, 즉 정보권(infosphere)을 생물학적 행위자들과 제작된 인공물들과 함께 공유한다. 정보권은 모든 정보적 과정, 서비스 그리고 존재자들로 구성된 정보적 환경인데, 따라서 정보적 행위자들뿐 아니라 그것들의 특성, 상호작용 그리고 상호관계들을 포함한다. 네 번째 혁명에 대한 대표적인 과학자가 필요하다면, 이것은 분명히 앨런 튜링(1912-1954)이어야 한다.

인포그는 과학소설적 판본의 '사이보그화된' 인류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육체에 블루투스 무선 헤드셋을 이식한 채 돌아다니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닌 듯 보이는데, 특히 그런 행동은 자체가 나타내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항상 호출에 대기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노예 상태이고, 그래서 매우 바쁘고 중요한 인물이라면 누구나 그 대신에 개인 비서를 두게 된다. 어떤 종류의 사이보그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피하려고 노력할 그런 것이다.  인포그라는 관념도 정보적 DNA와 그것의 미래 육화를 담당하는, 유전자적으로 변형된 인류를 향한 한 걸음이 아니다.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이 단계에서 진지하게 논의하기에는 기술적으로도(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그리고 윤리적으로도(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여전히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오히려 네 번째 혁명은 인간 행위자들의 본질적인 정보적 본성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개인들이 '데이터 그림자' 또는 디지털 분신, 즉 이메일 주소, 블로그 그리고 홈페이지로 표상되는 하이드 씨를 갖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선다. 이런 명백한 사실들은 디지털 정보통신기술을 역량 향상 기술에 불과한 것으로 오인하도록 부추길 뿐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행위자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이런 새로운 행위자들이 어떤 종류의 환경에 거주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서 일어나는 더 조용하고, 덜 선정적이며, 그럼에도 중요하고 심대한 변화이다. 그것은 우리 육체의 어떤 환상적인 교체, 또는 탈인간적 조건에 관한 어떤 과학소설적 추측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심각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실재와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의 급진적인 변형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것을 설명하는 좋은 방식은 향상(enhancing) 장치와 증강(augmenting) 장치를 구분짓는 것에 기대는 것이다.

맥박 조정기, 안경 또는 인공 수족 같은 향상 장치는 그 장치가 인간공학적으로 사용자의 육체에 부착될 수 있게 하는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이보그 발상의 시작이다. 그 대신에 증강 장치는 상이한 가능 세계들 사이에 소통(통신)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다. 예를 들면, 한편으로는 인간 사용자의 일상적 거주지, 외부 세계, 즉 실재가 존재하면서 그것에 거주하고 있는 행위자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동적이고 축축하고 미끈미끈하고 뜨껍고 어두운 설거지 기계의 세계, 마찬가지로 축축하고 미끈미끈하고 뜨겁고 어두울 뿐 아니라 회전도 하는 세탁기의 세계, 또는 고요하고 냉정하고 건조하고 차갑고 잠재적으로 빛을 내는 냉장고의 세계가 존재한다. 이런 로봇들이 성공적일 수 있는 까닭은 그것들이 자체의 역량 주변에 맞춤형으로 '포장된'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 그 반대의 상황 때문은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 행위자와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개수대에서 설거지를 하기 위해 <<스타워즈>>의 C3PO 같은 드로이드를 제작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착상일 것이다. 그런데 정보통신기술은 방금 설명한 의미로 향상하거나 증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통신기술은 사용자가 (아마도 우호적인) 게이트웨이를 통해서 진입하여 일종의 입회 의식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조장하기 때문에 장치를 급진적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이런 급진적인 형태의 개량을 나타내는 술어는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매우 급진적인 형태의 개량, 즉 체계(예를 들면, 회사, 기계 또는 어떤 인공물)를 새롭게 설계하고, 구성하거나 조직할 뿐 아니라  그것의 내재적 본성, 즉 존재론을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신조어로서재존재화(re-ontologizing)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마우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의 기술이 사용자로서의 인간에 적응했을 뿐 아니라 인간을 교육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25년에 태어난)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는 예전에 내게 자신의 가장 유명한 발명품, 즉 마우스를 다듬고 있었을 때 심지어 그는 사용자의 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그것을 책상 아래에 놓고서 발로 조작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고 말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은 대칭적 관계이다.

앞의 구분짓기로 돌아가면, 설거지 기계 인터페이스는 그 기계를 사용자의 세계와 접속시키는 패널인 반면에, 디지털 인터페이스는 사용자를 사이버공간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게이트이다. 이런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가상 공간', '온라인 상에 존재하기', '웹을 서핑하기', '게이트웨이' 등과 같은 다양한 공간적 비유들의 근저에 놓여 있다. 당연히 인류가 일상적 서식지에서 정보권 자체로 이주하는 획기적이고 전례가 없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는데, 특히 정보권이 일상적 서식지를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인간들은 정보적 산물들에 더 우호적인 환경에서 작동하고 있는 다른 (아마도 인공적인) 인포그와 행위자들 속에서 살아가는 인포그들이다. 우리 같은 디지털 이민자들이 우리 아이들 같은 디지털 원주민으로 일단 대체되면 e-이주는 완결될 것이고, 미래 세대들은 정보권으로부터 단절될 때마다 물 밖에 나온 고기처럼 박탈감, 배제감, 장애 의식을 점점 더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은 네 번째 혁명인데,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과 우주에서의 지위를 재평가하고 이동시키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실재의 궁극적 본성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일상적 시각, 즉 형이상학을 물리적 객체와 과정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유물론적인 것에서 정보적인 것으로 수정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그것들이 기체(基體)에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음악 파일을 생각하자)는 의미에서 객체와 과정들이 탈물리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객체의 일례(어떤 음악 파일의 내 사본)가 그것의 전형(내 사본이 일례인 당신의 음악 파일)만큼 훌륭하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은 전형화된다. 그리고 내 사본과 당신의 원본이 맞바꿀 수 있게 된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완벽하게 복사될 수 있다고 가정된다. 객체와 과정들의 물리적 본성을 덜 강조한다는 것은 사용 권리가 최소한 소유 권리만큼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현존에 대한 기준―무언가가 현존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더 이상 현실적으로 변경될 수 없다는 것(그리스인들은 변화하지 않는 것만이 완전히 현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이거나, 또는 잠재적으로 지각될 수 있다는 것(근대 철학은 현존하는 것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오감을 통해서 경험적으로 지각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 아니라, 막연할지라도 잠재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호작용이 간접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 존재한다는 것은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들을 살펴보자.

최근에 소프트웨어의 취득을 현재 사업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간주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산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여타의 자본 투입으로 취급함에 있어서 많은 나라들이 미합중국을 좇았다.  이제 소프트웨어에 지출하는 것은 어김없이 국내 총생산에 기여한다. 그래서 아무튼 무형의 것일지라도 소프트웨어는 (디지털) 재화로 인식된다. 가상 자산 역시 중요한 투자를 나타낸다는 점을 수용하는 것이 너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또는 중국에서 나타난 이른바 '가상 노동 착취 공장(virtual sweatshop)'이라는 현상을 고려하자. 폐쇄 공포증을 유발하는 초만원의 방에서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동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나 <리니지(Lineage)> 같은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다른 놀이꾼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캐릭터, 장비 또는 게임에서 통용되는 화폐 같은 가상 재화를 창출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의 최종 사용자 사용권 계약(EULA, 이것은 상업적 소프트웨어의 모든 사용자가 그것을 설치함으로써 받아들이는 계약이다)은 여전히 가상 자산의 판매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디지털 문서의 소유권을 사용자에게 주는 것을 보류하는 MS 워드의 EULA와 비슷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바타와 자산을 구축하는 데 수백 시간 그리고 수천 시간을 투자함에 따라 상황은 변할 것이다. 미래 세대들은 자신이 소유하기를 바랄 디지털 존재자들을 물려받을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이베이에서는 수천 개의 가상 자산이 판매되곤 했다. 소니는 더 적극적으로 '스테이션 교환', 즉 '놀이꾼들에게 SOE의 사용권 계약, 규칙 그리고 지침에 따라 게임 코인, 아이템 그리고 캐릭터들을 사고파는[내 사양에는 달러로] 안전한 방법을 제공하'는 공식적인 경매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상 자산의 소유권이 일단 법적으로 확립되면, 그 다음 단계는 재산 소송의 출현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2006년 오월에 펜실베니아의 한 변호사가 수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자신의 가상 토지와 다른 재산을 부당하게 압류했다는 혐의로 <세컨트 라이프(Second Life)>의 제작자를 고소했다. 아바타에 대한 위험을 보호하는 보험회사가 나타날 것인데, 이것은 지역 슈퍼마켓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애완동물 보험에 비견할 만하다. 또 다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탁월한 예를 제공한다. 월 사용자가 거의 1200만 명에 이르는 그것은 현재 세계 최대의 MMORPG이며, 인구 수에 따라 정렬된 221개국과 부속 영토들의 목록에서 71위에 해당할 것이다. 자신의 디지털 자산을 구성하고 불리고 개선하는 데 수십 억 시간을 소요한(소요할) 사용자들은 재산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기꺼이 몇 달러를 지불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은 실제로 미래 세대들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살아갈 새로운 정보적 환경을 창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평균적으로 영국인들은 이미 TV를 시청하는 것보다 온라인 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미합중국 성인들은 이미 정보권 내부에서 일 년에 거의 다섯 달에 이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인구의 나이는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예를 들면, 전미 오락 소프트웨어 협회에 따르면 2008년에 게임 놀이꾼의 평균 나이는 35살이었고 13년 동안 게임을 했으며, 가장 빈번한 게임 구매자의 평균 나이는 40살이었고 50세 이상 미합중국인들의 26%가 비디오 게임을 했는데, 그 비율은 1999년의 9%에서 증가했다.

――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 <<정보: 매우 짧은 입문(Informa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2010), pp. 8-14.

21세기의 관념들: 정보철학


1. 아래의 글은 <<TPM: The Philosophers' Magazine>>에서 기획한 <21세기의 관념들(Ideas of the century)> 가운데 13번째 관념 "정보철학(The philosophy of information)"에 대한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의 기고문을 번역한 것이다.

2. 정보철학, 기술, 윤리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루치아노 플로리디는 현재 영국의 허트포드셔 대학교(University of Hertfordshire)의 정보철학 교수이자 유네스코 컴퓨터 윤리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그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내는 '매우 짧은 입문서(A Very Short Introduction)' 총서의 하나로서 <<정보(Information)>>(2010)라는 책을 출판했다.


21세기의 관념들: 정보철학 (13/50)

루치아노 플로리디

우리의 재미없고 전문적인 개념들 사이에서 정보는 현재 폭넓게 사용되지만 거의 이해되지 않는 가장 중요한 개념들 가운데 하나이다. 철학은 그것에 주목할 필요성이 대단하다. 이 글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연구분야인 정보철학(philosophy of information)을 소개하는 빠르고 상스러운 방식이다. 이제 나는 더 긴 이야기를 간단히 묘사하고자 한다.

새로운 철학적 관념들의 전개는 경제적 혁신과 유사한 듯 보인다. 슘페터(Schumpeter)가 경제적 혁신을 해석하기 위해 "창조적 파괴"라는 관념을 개작했을 때, 그는 지적인 전개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끊임없이 자체를 다시 제작함으로써 번성한다. 오늘날 그것의 혁신적인 견인력은 정보통신 현상들의 복잡한 세계, 그것들에 해당하는 과학과 기술들, 그리고 새로운 환경, 사회적 생활 및 그것들이 초래하고 있는 실존적인 쟁점들과 문화적인 쟁점들에 의해 표현된다.

이것 때문에 정보철학이 혁신적인 패러다임으로 나타나며, 매우 풍성한 게념적 탐구 영역을 개방한다. 정보철학은 (a) 정보의 동학, 효용, 그리고 과학들을 비롯한 정보의 개념적 본질과 기본 원리들에 대한 비판적 탐구와 (b)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정보이론적 방법론과 계산적 방법론의 개선과 적용에 관계하는 철학적 분야이다. 달리 말해서, 정보철학은 고전적인 "본질" 문제, 즉 "정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시적이고 명료하며 정확한 해석을 전유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분야의 가장 명료한 특징이다. 무엇이든 어떤 다른 분야의 질문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한 연구분야를 구획짓는 데 사용될 뿐이지 그것의 특정한 문제들의 지도를 상세히 그리는 데 사용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정보철학은 여태까지 철학에서 고안된 가장 강력한 어휘들 가운데 하나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설명을 제공하는 데 입수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할 때마다 정보적 개념들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어떤 쟁점도 정보적으로 재서술될 수 있다. 그런 의미론적 힘이 하나의 방법론으로 이해될 때(앞의 정의 가운데 두 번째 부분을 보라)의 정보철학의 큰 이점이다. 그것은 우리가 유력한 패러다임을 다루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단점일 수도 있는데, 은유적으로 범정보적인 접근방식은 위험한 모호성을 낳기 때문이다. 즉, 어떤 x도 (다소간 은유적으로) 정보적 견지에서 서술될 수 있기 때문에, x가 무엇이든 그것의 본질이 진정으로 정보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모호성 때문에 정보철학은 나름의 주제를 갖는 철학의 한 분야로서 자체의 특정한 정체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보철학은 철학과 동의어가 될 위험을 겪는다.

이런 정체성 상실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정의의 첫 번째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나의 철학적 분과학문으로서의 정보철학은 방법론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표명되는지라기보다 문제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또는 환원될 수 있는지)에 의해 규정된다. 많은 철학적 쟁점들이 정보적 분석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는 듯 보이지만, 정보철학에서 방법론은 그저 은유적인 상부구조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토대를 제공한다.

정보철학은 이미 존재하는 주제들을 결합함으로써, 그래서 철학적 시나리오를 재배열함으로써가 아니라, 새로운 철학적 탐구 분야들―인정받을려고 노력했지만 전통적인 철학 교과과정에서 아직 여지를 발견하지 못한―을 포괄함으로써, 그리고 새로운 시각에서 전통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혁신적인 방법론을 제공함으로써 철학적 연구의 전선을 확대하려고 한다. 십칠 세기에 이루어진 과학혁명 때문에 철학자들은 인식가능한 객체의 본질에서 그것과 인식하는 주체 사이의 인식적 관계로, 그러므로 형이상학에서 인식론으로 주의를 돌린다. 뒤를 이은 정보사회의 성장과 오늘날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환경으로서의 정보권(infosphere)의 출현 때문에 현대철학은, 처음에는 조직화된 지식에 대한 기억과 언어들, 즉 정보권이 관리되는 도구들에 의해 표상되는 영역에 관한 비판적 성찰에 특권을 부여하게 되었고―그러므로 인식론에서 언어와 논리에 관한 철학으로 이동하였다―그 다음에는 조직화된 지식의 바로 그 얼개와 본질의 특질, 즉 정보 자체에 관한 비판적 성찰에 특권을 부여하게 되었다. 따라서 정보는 존재, 지식, 생명, 지능, 의미, 또는 선과 악―모두 정보가 상호의존성을 갖는 핵심 개념들―만큼이나 근본적이고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했고, 그래서 마찬가지로 자율적으로 탐구할 가치를 갖게 되었다. 또한 정보는 규정되지 않을 때, 그것의 견지에서 여타 개념들이 표현되고 상호연결될 수 있는, 더 결핍된 개념이다. 이것 때문에 정보철학이 우리의 지적 환경의 합목적적 구성을 설명하고 지도하며, 현대사회의 개념적 토대를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정보철학의 미래는 그것이 얼마나 잘 고전적인 철학적 쟁점들에 관여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나는 낙관적이다. 우주의 알파벳을 파악하고 조작하려는 베이컨-갈릴레오적 기획은, 실재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우리가 실재 및 그것 속의 우리 자신들을 개념화하는 방식에 매우 심대하게 영향을 미친 컴퓨터 혁명과 그것이 초래한 정보적 전환(informational turn)에서 그 기획의 성취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정보적 서사들은, 마술적 담화, 즉 로고스나 신비적 방식의 표현이 아니라, 내재적으로, 우리 자신들을 서술하고, 변경하며, 이행할 수 있는 제작 도구로서 존재자적 힘을 소유한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정보철학은 자연적 및 인공적인, 물리적 및 인류학적인 실재의 구성, 개념화, 의미화(의미 부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덕적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정보적 활동들에 관한 연구로서 제시될 수 있다. 정보철학 덕분에 인류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책임감있게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정보철학은 우리 시대의 가장 흥미롭고 유익한 철학적 연구 분야들 가운데 하나일 듯하다.

더 읽을 책
루치아노 플로리디, <<정보철학(The Philosophy of Information)>>(2011).

번역: 김효진

2015년 10월 1일 목요일

구조자 이론(Constructor Theory) : 데이비드 도이치의 세상을 설명하는 더 근본적인 이론

구조자 이론(Constructor Theory)
: 데이비드 도이치의 세상을 설명하는 근본적인 이론
http://newspeppermint.com/2015/03/04/m-constructor/
19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벨랩에서 일했던 클로드 섀넌은 자신의 실제 업적에 비해 덜 알려진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그가 1948년 발표한 정보이론은 디지털 통신을 수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이론입니다. 휴대폰, 디지털 텔레비젼, 디지털 라디오, 컴퓨터, 인터넷 등 모든 디지털 장치는 그의 정보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 섀넌은 21세기 현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정보이론은 오직 고전적인 정보, 0 1로 이루어진 정보에 대한 것입니다. 반면 양자세계에서 입자는 0 1의 값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양자 컴퓨터가 특정 문제에 있어서 기존의 컴퓨터보다 더 강력해질 수 있는 이유이며, 양자 암호 역시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 양자세계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이론이 필요하며, 이 떄문에 일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이 문제에 골몰해 왔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데이비드 도이치와 키아라 마를레또 역시 이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들은 최근 고전적 정보이론과 양자 정보이론을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이 이론을 구조자(constructor)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이 이론은 양자역학보다 단순하면서 동시에 양자역학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른 물리법칙들 역시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 도이치는 이 구조자 이론이 모든 물리법칙을 도출해낼 수 있는 근본 원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조자 이론은 우주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술합니다. 그는 물리학자들은 지금까지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초기조건과 운동방정식이라는 방법을 사용해왔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어떤 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고, 어떤 현상들이 일어날 수 없는지를 알려줍니다.
구조자 이론은 이를 반대로 생각합니다. 이 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은 물리법칙 그 자체를 가능한 물리적 변환과 불가능한 물리적 변환들을 이용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물리법칙이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에 따라서 물리 법칙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어떤 변환이 가능한지, 그리고 어떤 변환이 불가능한지를 생각함으로써 역으로 우리는 물리법칙을 도출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구조자 이론이 다른 어떤 물리법칙보다도 더 근본적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도이치는 실제로 구조자 이론은 물리법칙이 아니라 물리법칙들이 만족해야할 근본 원리, 그리고 그 근본원리들의 집합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에너지 보존을 예로 들며 이를 설명합니다. 에너지 보존은 양자역학이나 상대론과 같은 물리법칙이 아니라 모든 물리법칙이 만족해야할 원칙입니다. 에너지는 화학에너지, 전기에너지,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다양한 형태로 바뀌며 각각의 변환에 있어 서로 다른 물리법칙을 만족하며 변화합니다. 그러나 어떤 변환의 경우에도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원칙은 유지됩니다.
, 에너지 보존 법칙은 운동에 대해 운동 법칙보다 더 상위의 설명을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조자 이론도 이와 비슷합니다. “구조자 이론은 물리적 개체의 운동에 대한 법칙이 아니라 그 물리 법칙들이 가져야할 제한조건들에 대한 법칙입니다.” 즉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하나의 법칙인 것입니다. (마치그렇습니다. 톨킨이라면 절대반지에 대해 이야기했겠죠.)
이 이론에서는정보가 에너지 보존 법칙에서의 에너지 역할을 합니다. 정보는 빛을 통해, 화학물질을 통해, 전기를 통해, 봉화를 통해 전달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대상은 다른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나 정보 그 자체는 이들과 분리될 수 있습니다. 즉 정보는 매개체들에 대해 독립적입니다. 그러나 정보 역시, 물리법칙과 무관하게 보존되어야 합니다.
정보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논문에서 그 법칙이 어떠해야 하는 지 추측했습니다.”
이들이 주목하는 점은 정보는 물리적 환경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절대로 추상적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많은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이 가졌던 정보에 대한 접근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정보를 물리학에 결합하려는 시도들은 정보를 어떤 수학적인, 혹은 논리적인 개념으로 가정했습니다. 우리는 그 반대의 접근을 취했습니다.”
그들은 구조자 이론에서 9개의 원칙을 정의했고, 정보에 대해 어떤 것이 가능하고 어떤 것이 가능하지 않은지를 적용했습니다. 이 원칙들은 계산, 측정, 그리고 고전적 정보의 개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도이치와 마를레또는 어떤 불가능한 정보처리과정과 관련된초정보(superinformation)”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이들은 양자정보의 독특한 특징이 바로 불가능성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양자 정보는 초정보의 한 예로 보입니다.”
이들의 접근은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보를 정의하는 것은 언제가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정보이론에서정보(information)”구별가능성(distinguishability)”는 마치 닭과 달걀처럼 서로를 정의했었습니다그러나 구조자 이론에서 정보의 본질은 물리법칙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는 위의 문제를 깔끔하게 회피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론은 고전 정보와 양자 정보가 하나의 이론안에서 설명되는 최초의 이론입니다. 이는 떠오르는 분야인 양자 컴퓨터와 양자 암호, 양자 통신에 있어 이 이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구조자 이론이 물리법칙 자체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도이치와 마를레또는 어떤 더 상위이론으로부터 양자역학을 유도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 이론의 원칙들이 에너지보존과 배우 비슷하게 작동한다는 점이 이 이론을 상위의 이론으로 여겨지게 만듭니다. 에너지 보존은 모든 물리법칙이 이를 만족한다는 점에서 더 상위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물리법칙들 역시 에너지 보존 원칙을 만족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구조자 이론의 원칙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지금까지의 물리법칙들은 이 원칙들을 만족하고 있으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물리법칙 역시 구조자 이론의 원칙들을 만족할 거라고 말입니다.
구조자 이론에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 이론이 얼마나 유용할 것인가입니다. 도이치 자신은 이 이론이 세상을 더 포괄적으로 설명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자체가 이 이론을 탐구해야할 충분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다른 이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구조자 이론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려줄 검증가능한 가설 같은 것들 말이지요. 아마 도이치의 이론을 더 많은 물리학자들이 연구하다보면 실험가능한 예측이 등장할 것입니다.
물론 물리학자들은 이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도이치가 저명한 학자이며 가장 창조적이고 독특한 물리학자 중의 한 명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도이치는 1980년대부터 양자 컴퓨터 분야를 연구했습니다. 당시 양자역학을 계산에 활용하는 것은 주류 물리학의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양자컴퓨터는 물리학 분야 만이 아니라 신기술의 입장에서도 주요한 연구 분야중의 하나입니다그는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과 다중우주 이론에도 참여했습니다. 그 이론 역시 우주론 분야에서 비주류에서 주류로 바뀐 이론입니다. 이는 그의 연구이력이 매우 인상적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아마 구조자 이론 역시 물리학에 있어 더 심오한 결과들을 만들 것이며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여줄 것입니다. 적어도 2001년 세상을 떠난 섀넌이라면, 그의 이론을 매우 흥미롭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Physics arXiv)


2015년 9월 15일 화요일

가속주의: 크루즈 컨트롤 Accelerationism: Cruise Control ―― 맥켄지 워크(McKenzie Wark)

가속주의: 크루즈 컨트롤
Accelerationism: Cruise Control


01. 가속주의에 관한 대부분의 관념들―찬성과 반대―이 자본주의는 항상 다소간 동일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자본주의는 자체를 긍정할 수 있는데, 가속되어 미래에 무언가 다른 것이 된다. 또는 그것은 부정되어 무언가 다른 것에 의해 전복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자체는 항상 동일한 듯 보인다.

02. 그런데 그러한가? 이것은 여전히 자본주의인가? 그것이 더 나쁜 것이었다면 어쩔 것인가?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내가 주장한 적이 있듯이, 우리는 상품 경제가 이미 세 단계―토지의 인클로저, 물건의 대량 생산 그리고 정보의 상품화―를 거쳤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각 단계는 별개의 사적 소유 형태인데, 계급들, 소유자와 비소유자들의 연속적인 양극화를 낳는다.

03. 변형적 가능성들은 소유 형태가 전개되는 각 단계와 더불어 변화한다. 토지 인클로저는 반동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농노 저항을 낳았다. 상품으로서의 물건의 대량 생산은 급진적이면서 개혁주의적인 노동 운동들을 낳았다. 이런 진행 중인 착취 형식들의 꼭대기에 층을 이루는 새로운 착취 형식들은 새로운 종류들의 논쟁과 조정을 낳고 있다.

04. 새로운 상품화 단계는 노동으로부터 잉여 가치를 추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놀이로부터 잉여 정보를 추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정보를 공짜로 제공하지만, 그 대가로 더 많은 정보―잉여 정보―를 추출함으로써 가치를 추출한다.

05. 그런데 이런 새로운 형태의 상품 경제는 도전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야기하는 대항 흐름들은 '정치'라는 범주로 적절히 포착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투쟁은, 보그다노프(Bogdanov)가 말하곤 했듯이, 상품화와 더 나은 조직 형태들의 가능성 사이에 벌어질 것이다. 조직의 문제는 동시에 자원, 기법, 인간 및 비인간의 힘, 정동과 정보에 관한 문제이다.

06. 예전에 대체로 전향적이었던 좌파 담론이 이제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는가? 그것은 자체의 두 번째 10월을 바란다. 또는, 그것은 그리스도-레닌-메시아를 바란다. 그것은 도약과 사건들을 바란다. 어떤 자율적 영역도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는 시기에 그것은 정치적 활동의 자율적 영역을 바란다. 조직 양식들의 문제가 다시, 그리고 정치 이론의 영역 바깥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07. 물론 "아무 대안도 없다"는 언어에 대해 굴복하는 비정치적 이론보다 정치적 이론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우리 대안들은 영원한 자본주의에 대한 몰역사적, 철학적 이해들이 아니라, 상품 관계의 현재 형식들에 대한 분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우리는 카스토리아디스(Castoriadis)가 상상적 제도―이것으로 조직이 자체의 형태에 함축된 국면 변화들을 찾아낸다―라고 부른 것을 재개해야 한다.

08. 그들이 구사하는 수사법으로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요즈음 이야기는 붕괴, 창조, 파괴에 관한 것이다. 아방가르드와 혁명가들의 옛 언어는 이제 실리콘 밸리 홍보 담당자들의 분야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언어에 대한 주의 깊은 분석이 필요하며, 그리고 새로운 아방가르드가 필요하다. 이것이 자체의 지속 수단을 해체하느라고 바쁜 상품 경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착상들이 고갈되어 버렸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과업은, 이것이 결국 덜 효율적이고 덜 효과적인 조직 형태들을 초래할지라도, 사회적인 것들이 상품화되도록 그것들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더 스쿨에 아이패드를 배치하자! 그 결과는 덜 효과적이고 비용이 더 많이 들 것인데, 그것이 물론 목표이다.

09. 우리 시대의 지배 계급은 지대 추구 계급(rentier class)이다. 그것은 사실상 혁신적이지 않고 파괴적이지 않다. 그것은 아무것도 가속화하지 않는다. 기술적 혁신은 상품화를 새로운, 더 추상적인 차원, 즉 정보의 차원으로 밀어붙였다. 그런데 계획은 대체로 그런 영역들에서 유사 독점적인 지대 추구 행동에 밧줄을 쳐서 지속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지배 계급―내가 벡터적 계급(vectorial class)으로 부르는 것―은 정보가 정말로 '혁신'의 양식이 아니라 조직 통제의 양식이기를 바란다.

10. 이런 바로크적 질서에 대한 도전은 더미의 기반에 놓여 있는, 그것이 실존의 물질적 조건과 맺고 있는 관계 안에 전적으로 속한다. 부정은 항상 아래에서 비롯된다. 위로부터의 부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모라에 맞서는 판단을 제공할 절대적 타자성의 다른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보편적인 평등성의 보복 천사 같은 코뮨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지의 것을 향한 부조리주의적 도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벡터적 계급에게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것 자체의 해체의 체계적 성질이다. 그 목록에서 첫 번째 항목이지만 마지막 항목은 아닌 것은 항상 증가하는 대기중 탄소의 수준이다. 붕괴를 촉발할 것은 철학이나 예술이 아니라 식량 가격의 급등이다.

11. 상품 경제는 자체의 유독한 접촉으로 무엇이든 모든 것을 감염시키는, 알튀세르가 "표현적 총체"라고 부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본주의적인 것도 아니며, 오히려 상품 조직 양식과 비상품 조직 양식의 이질적인 혼합물이다. 또한 상품 형식들은 최소한 세 가지의 역사적 형식으로 분화되는데, 토지, 자본 그리고 정보를 사유 재산의 형식으로 만든다. 자본주의는 총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의 부정도 총체적이지 않다. 이질적인 형식과 목표들을 함께 분명히 표현하는 더 추상적이면서 더 구체적인 조직의 언어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최소한 라클라우(Laclau) 무페(Mouffe) 그리고 스튜어트(Stuart)의 유산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12. 가속주의 비판가들은 나 역시 총체적 부정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상 그렇다. 그런데 이것은 드보르(Debord)가 "낙관주의의 어리석은 잡담"이라고 부른 것을 제거하고 전략적 사유의 공간을 개방한다. 조직 사상가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질서정연한 퇴각을 조직하는 것이다. 다양한 점에서 지금으로서는 질서정연한 퇴각이 우리의 과업일 것이다. 그것은 유토피아적 상상을 풀어놓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데, 비록 그것이 사도 바울의 절멸시키는 천사들이 아니라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의 퀴어 코스모스일지라도 말이다.

13. 그래서 자격을 갖춘 한 가지 가속주의가 존재한다. 자본주의는 몰역사적이라는 점도 수용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가속화가 실제로 '진보'라는 점도 수용하지 않는 가속주의. 그런데 과거 또는 신비로운 타자를 너무 많이 믿지 않는 가속주의. 난제는 세계를 조직하는 데 있어서 손 닿는 곳에 있는 다양한 하부구조로 더 잘 해내는 것이다.

14. EP 톰슨(Thompson)이 절멸주의(exterminism)라고 부른 것의 언어에는 어떤 매력이 있다. 인간중심적 세계에 관한 추상적 사유로서 이천 년 동안 실패한 이후에 철학은 그 부분을 정말 건너뛰고 인간 없는 세계에 관한 사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관주의적 철학들이 아니라, 더 말할 것도 없이 철학과 관련되어 있다. 철학자들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었다면, 그들은 이미 그렇게 했었을 것이다.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들의 다른 연결망들 속에서 전적으로 다른 종류들의 사유를 조직할 시기이다. 사유의 문제는 조직적 문제이다. 주인 사상가들의 스펙터클을 끝내자.

15. 그렇다면 돌아갈 길은 없다. 우리는 과거-현재-미래를 연결짓는 새로운 시간적 재즈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시간적 재즈를 사유하는 현실의 타자들과 함께 더 다원적인 형식으로 생각하자. 가속주의를 코드보 이슌(Kodwo Eshun)의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 베아트리즈 프레치아도(Beatriz Preciado)의 젠더 디엔지니어링(gender de-engineering), 고인이 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의 테크노페미니즘(techno-feminism) 등과 결합하자. 또 다시 계층 구조에서, 그리고 어떤 역사적 레카토 주법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자. 지금까지 어떤 가속주의적 동지들은 차이들로부터 추상하는 어떤 진부한 양식들에 의존했다. 오히려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추상화, 그저 낡은 가부장적 규범들을 단언함으로써 그런 차이들을 없애버리지 않는 추상화가 필요하다. 우리를 위한 미래를 계획해 달라고 아버지에게 요청하는 것은 비행하지 못할 것이다. 낡은 유형의 추상된 합리성에 기반을 둔 대규모의 계획은 전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부구조가 큰 것들의 작은 그물코가 아니라 작은 것들의 큰 그물코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부구조가 정초하고 있는 반석을 대단히 블안정하게 만들어서 그 반석이 점점 더 붕괴에 취약하게 되었다.

16. 그런데 또 다시 계층 구조에서 생각하라고 요청한다는 점에서 윌리엄스와 스르니체크 같은 가속주의자들은 옳다. 적은 확실히 존재한다. 필립 미로우스키가 우리에게 적의 계획을 제시했다. 첫째, 그것이 먹힐 동안에는 기후 변화의 실재성에 관해 거짓말을 하라. 둘째, 상품 형식을 바꾸지 않은 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활용하라. 세째, 탄소 배출을 절감하지 않은 채 대기중 탄소의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지구공학을 활용하라. 요약하면 적의 계획은 우리를 더욱 더 괴롭히는 것이다. 사유 재산을 위해 그들이 희생시키지 않을 것은 생명 자체를 비롯하여 아무것도 없다.

17. 생명력은 국가의 주요한 목적이 아니다. 그렇다. 국가는 국민에 맞서 무장하고 있다. 국가는 전 국민에 대한 감시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필요하다면, 국가가 우리에 맞서 재산을 옹호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것이 국가의 처음이자 마지막 임무이다. 여러분은 공포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지배 계급은, 조용한 순간들에, 국가가 자체의 과업을 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18. 그렇다면 우리의 과업은 가장 힘든 과업이다. 질서정연한 후퇴. 파산 선고를 받고 기력이 떨어진, 상품화에 기반을 둔 이 조직 형식이 내일 사라질지라도, 물질적 실존 조건은 여전히 우리에게 적대적이다. 과거의 역사적인 갈고리를 원한다면, 그것은 바스티유의 습격이 아니라 모스크바로부터의 퇴각이다. 모든 친프랑스적 행위 이론의 변함없는 중심인 자코뱅적 정치 모형을 끝내자. 프랑스중심적 세계를 고수해야 한다면, 그것과 양쪽 측면을 접하고 있는 클라우제비츠(Clausewitz)나 푸리에를 읽고, 그래서 행위를 상상의 정치적 문제에서 더 하부구조적인 문제들로 옮기자.

19. 우리는 약한 사회적 고리들의 약한 권력 위에 정초할 수 있는가? 추상된 사회성의 권태, 무관심, 불투명함 그리고 양가성이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데이터펑크(datapunk)일 수 있는가? 여기에 삼 기가바이트가 있다, 가서 당신 자신의 사회를 구성하라. 우리는 메타펑크(metapunk)일 수 있는가? 우리는 자신의 메타데이터를 관리하고, 적절한 채널들의 그림자 속에서 횡단적 조직들을 구축할 수 있는가? 우리는 파이프라인 앞에 자기 육체를 내놓을 태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뒷받침하는 방대한 익명의 지지 집단일 수 있는가? 우리는 인프라펑크(infrapunk), 즉 다른 한 삶의 구조의 작은 조각들의 건설자일 수 있는가? 

20. 우리는 현대 예술과 절연할 수 있는가?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면 행운을 빈다. 우리는 모두 자기 본업이 있다. 우리는 성공적인 예술가를 그저 본업을 갖고 있는 다른 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그의 진짜 일은 무언가 다른 것인지 물을 수 있는가? 우리 시대의 실제 예술은 조직적일 뿐이다. 그것은 실제 제약 속에서 작동하면서 부분적으로 탈상품화하는 자원의 조직들을 제안한다. 현대 예술은 쓸모없는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것일 뿐이다. 여러분이 얻을 수 있다면, 해지 펀드들의 돈을 취하라. 그러나 그들의 가치 감각은 결코 취하지 마라. 우리 모형은 아스게르 요른(Asger Jorn)이어야 하는데, 그는 수집가들로부터 돈을 취하여 전후 유럽의 가장 거대한 아방가르드들에 투자했다.

21. 요른이 뒷받침한 아방가르드들은 불안정한 사람들이었다. 여기 지나치게 개발된 세계에서 이것은 이제 일반적인 조건이다. 지배 계급은 지대를 수금하기를 바라지만 어느 누구도 고용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평소처럼 운영되는 사업은 실제 노동을 점점 더 적게 필요로 하는 반면에, 탈탄소 생산 양식을 향한 질적인 변화는 수십 년 동안 계속 분주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구조적인 양도를 거의 하지 않는 국가를 현재 소유하고 있는 지배 계급에 맞서 벌어지는 그런 변화는 많은 구성 요소들의 사회적 운동을 조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2. 우리가 당대의 명백한 '정치'을 적절히 명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정치가 아니라 파시스트적 정치이다. 동의는 증오할 외집단을 가리킴으로써만 확보된다. 당대의 공물은 대단히 변변치 않아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훨씬 더 나쁜 것을 겪도록 함으로써 유의미한 듯 보이게 될 수 있을 뿐이다. 파시즘에 맞서는 새로운 인민 전선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 더 큰 운동에서 우리의 위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23. 탈포드주의와 후기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는 현재의 생산 양식에 대한 빈약한 이름이다. 그 이름은 그것의 새로운 특징들이 아니라 한 가지 낡은 특징에 주의를 집중하게 만든다. 그것은 국가의 한 가지 특징만을 적절히 명명할 뿐이다. 자유주의적 국가는 시장을 규율했던 반면에, 현재 신자유주의적 국가를 규율하는 것은 시장이다. 상품 경제의 신흥 형식들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그것은 신-무엇이거나 탈-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후기 자본주의나 인지 자본주의가 아니다. 수식어들을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존재론적 변양태, 즉 정보라는 범주의 역사적 생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것을 서술할 새로운 언어를 고안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언어들을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오랫 동안 동일한 낡은 책들을 읽었다.

24. 하나의 존재론적 실재로서의 정보의 역사적 생산은 냉전의 조직적 난제들의 산물이다. 상이한 생산 양식들을 갖추고 있던 소비에트와 미합중국 둘 다가 그것에 이르렀다는 점은 흥미롭다. 정보의 실재의 역사적 생산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생산 관계들과 독립적이다. 그런데 당분간 다른 한 조직 모형에 대한 약속은 여전히 상품 형식 속에 갇혀 있는데, 그것이 꽤 새롭고 기묘한 상품 형식, 즉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물건의 대량 생산 형식들의 외부에서 이미 조직된 형식일지라도 말이다.


25. 새로운 상품 형식―정보―이 새로운 종류들의 계급 관계를 산출하고 있다. 여기서 아방가르드는 또 다시 입수 가능한 고전적 역할―신흥 계급의 일상 생활 형식들로 실험할―을 찾아낸다. 이제 전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우리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미셀 베른슈타인(Michele Bernstein)와 함께 우리는 "세계의 괴물들이여, 단결하라!"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세계의 데이터펑크들이여, 단결하라! 우리는 잃을 세계가 없다!